27일 상오11시. 요하네스버그 인근 샌다운지역의 구청에 설치된 투표소 앞에는 끝을 찾을 수 없는 긴 행렬이 이어졌다. 끝을 확인하느라 굽이굽이 선 줄을 한참 헤집고 가야 했다. 3∼4는 족히 돼 보이는 행렬이었다. 맨 뒤에 선 사람은 아마도 7∼8시간은 기다려야 투표소에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줄을 포기하고 가는 사람은 눈에 뛰지 않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사람, 싸갖고 온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 신문을 읽는 사람. 가을 뙤약볕 아래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으나 이들의 마음은 단 한가지였다.
그것은 새 시대, 새 나라,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맞는 감격과 흥분, 그리고 기대였다. 백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지역인데도 행렬의 90% 이상은 검은 얼굴들이었다. 수십명에게 투표소감을 물어보았다. 대답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평생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오늘의 투표는 나의 손자를 위한 투표이다』 『인간으로서의 위엄이 회복되는 순간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투표한다』
이날 흑인들은 생애 최초의 투표를 위해 일어난 것만 같았다. 흑인 최대도시 소웨토시에는 주민들이 투표소 옆에 천막을 치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누가 가장 먼저 감격을 맛볼 것인가 하는 경쟁도 벌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용지가 동이 나 선관위가 긴급 공수해야 했다. 투표시간이 자정까지 연장된 곳도 생겨났다. 정부는 결국 투표 마지막 날인 28일까지도 임시휴일로 긴급 지정해야 했다. 여기에는 선관위의 경험미숙으로 인한 투표지연사태도 작용했다.
백인사회는 물론 흑인들마저도 놀란 뜨거운 열기였다. 이날 남아공 전역은 무슨 거대한 통과의례를 치르는 것만 같았다. 무대에는 희망, 꿈, 화해, 평등, 단결등 온통 추상적인 단어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날도 공항등 곳곳에서는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경찰차량의 사이렌 소리는 여전히 귀를 울렸다.
TV의 한 사회자는 저녁 뉴스시간에 『폭탄테러도 오늘의 투표행렬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남아공의 희망찬 앞날은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뉴스를 끝냈다.【요하네스버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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