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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생활에도 “희망의 눈빛”(남아공 역사적총리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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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생활에도 “희망의 눈빛”(남아공 역사적총리 현장을 가다)

입력
199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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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봉 특파원 제3신/흑인촌 소웨토 깡통집 즐비/어린이들 “만델라가 좋아요”/변화욕구… 새정권엔 부담도 요하네스버그로부터 남서쪽 40에 위치한 남아공 최대의 흑인도시 소웨토. 이 도시의 비극은 이 도시가 관광객과 백인들의 관광코스중 하나가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구 3백50만명에 줄루족, 코사크족등 모든 흑인 종족이 모여사는 소웨토는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집단난민부락같은 모습이었다. 백인들의 모습은 흑인관광안내원을 꼭 붙어다니는 관광객을 빼고는 아무리 눈을 씻고봐도 없다. 흑인들이 가정부, 정원사, 경비원이 아니면 백인도시에 들어갈 일이 없듯이 백인들이 일자리나 돈벌이를 찾아 이곳에 올 리도 없다.

 흑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비참한, 그러나 순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돈을 번다. 소형버스로 반나절동안 시내를 도는 관광요금은 1인당 90랜드(약 2만원). 피부색깔이 다른 외지인이 혼자 이곳을 찾으면 금세 표적이 돼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총선을 하루앞둔 25일. 소웨토시민들의 표정은 승리를 눈앞에 둔 전사들 처럼 밝고 의기양양했다. 관광객들에게 V자를 그려보이며 자신들이 취재대상이 되는 것을 즐거워하는듯이 보였다.

 먹고 살기에 바빠 특별한 선거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선거벽보 앞에 모여서 얘기를 주고받고 전단을 뿌리기도 했다.

 여윈 얼굴에 까만 눈만 반짝거리는 어린이들이 관광버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만델라가 좋아요. 데 클레르크는 싫어요』라는 「만델라 송」을 불러댔다. 동전을 구걸하는 천진한 어린이들은 사진을 찍자고 하면 전형적인 흑인투사의 용맹스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선과 악, 추함의 도시」라고 한 관광 팸플릿에 소개된 소웨토에 가장 많은 것은 이른바 「깡통집」으로 불리는 성냥갑만한 양철집과 쓰레기더미. 깡통집을 짓느라고 버스터미널의 양철지붕이 하나도 남아있는게 없다. 한달에 한번씩 오는 쓰레기 수거차도 주민들이 몇푼 안되는 청소비를 안내 6개월째 오지 않는다.

 주민들은 방한칸의 이 양철집에 5∼6명씩 또는 몇가구씩 살기도 한다.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낳았는지, 아니면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인지 어린이들이 골목골목에 가득하다. 담이라고는 없는 깡통집, 함석집같은 이런 집은 땅주인에게 수십랜드의 돈을 주고 짓거나 월10랜드(약2천2백원)씩 사글세로 산다.

 일부를 빼고는 상·하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주민들은 절반이상이 실업자이고 도시의 점원, 육체근로자, 백인가정의 고용원, 광부등이다. 약 80%가 기독교신자로 교회는 눈에 많이  띈다. 대학도 하나 있고 투투주교가 다니던 학교, 만델라가 연금됐던 집이 있다.

 90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후 생활은 다소 나아졌다. 흑인 근로자들은 대도시 일자리로 진출, 요하네스버그는 흑인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몰려드는 흑인과 안전문제로 사무실을 백인타운으로 옮기고 있다.

 이곳에도 「베벌리 힐스」는 있다. 소규모 사업체를 갖거나 매니저등으로 승진한 흑인상류층은 정원이 딸린 비교적 큰 집에 살며 벤츠등 고급승용차를 갖고 있었다.

 소웨토 시민들은 총선후를 기다리고 있다. 막연히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차 있다. 76년 6백여명의 사망자를 낸 「소웨토 항쟁」을 기억하는 남아공은 총선후의 소웨토를 주시하고 있다.

 이곳은 며칠후 축제의 도시가 될것이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면 그동안의 억눌림과 흑인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할 것이다.

 남아공 전체를 볼때 흑인의 소득은 백인의 10%이하이며 절반이 실업자이고 60%가 농촌에 산다. 80%에 전기·상하수도가 없고 5명중 2명이 문맹이다. 흑인가정부의 월급은 약 1백달러.

 흑인들은 일과 교육, 더 나은 삶을 원한다. 그들은 변화를 원하며 변화는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러나 변화가 눈앞에 빨리 나타나지 않을 때 이들의 기대감은 어떻게 폭발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만델라가 안고 있는 신정권 최대의 과제인 것같다.【소웨토(남아공)=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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