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마음대로… 마을잔치 뒤풀이 온동네 합창곡 산청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육괴가 가장 큰 토산으로 봄이 되면 그야말로 꽃을 뿜어댄다. 산청으로 가는 길도 그랬다. 진달래와 산벚꽃, 영산홍, 조팝나무의 분홍색과 흰색이 갖가지 초록무늬와 화려하게 어울린 봄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황홀하게 흔들어 놓는다.
「쾌지나칭칭나네」를 듣는 곳으로 산청을 택한 것은 그곳에 젊은 소리꾼 김대환씨가 있어서였다. 도착해 보니 그 30대 사나이는 10∼20대에까지 우리소리와 가락을 가르치고 있었다.
산청읍으로 들어서면 농협창고에 「우리쌀 지켜내어 외국쌀 막아내자」같은 구호가 어지러운데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 구호가 비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린 소리꾼들이 자라는 산청은 우루과이 라운드를 이겨낼 만큼 넉넉해 보였다.
김씨가 가르치는 제자 가운데 가장 어린 국민학생을 찾아 산청군 금서면의 금서국민학교로 간다. 금서면은 시천면과 더불어 산청군의 왼쪽, 즉 지리산쪽에 자리잡고 있다. 벌써 이름부터 꽃의 계곡(화계)이다. 학교 오른쪽의 언덕에는 가야의 마지막 임금이 잠든 구형왕릉이 있다.
다른 시골국민학교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이농현상에 시달려 전체 학생수가 불과 92명. 『그래도 산청군내 25개 국민학교 가운데 6개 학급이 유지되는 7개 학교 가운데 하나』라고 정재동교장(59)은 말한다.
6학년 20명 가운데 「쾌지나칭칭나네」를 안다는 아이들은 5명 남짓이다. 김씨가 선소리를 매기며 뒷소리를 따라 하게 하니까 모르는 아이들도 따라 하면서 저절로 입이 벙글어진다.
<천지신명 영감받아 쾌지나칭칭나네, 감응하신 비줄련가 쾌지나칭칭나네, 천둥치고 바람부니 쾌지나칭칭나네>천지신명 영감받아 쾌지나칭칭나네, 감응하신 비줄련가 쾌지나칭칭나네, 천둥치고 바람부니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는 경상도지방에 전해오는 파연곡이다. 파연곡이란 마을잔치를 마칠때 부르는 합창곡을 말한다. 동네환갑잔치도 좋고 풍어제, 지신밟기같은 행사의 뒤끝은 물론이고 모내기와 추수를 하고 돌아오면서도 불렀다.
황롱주씨(78·산청읍)는 『씨름할 때 많이 불렀재. 홍수가 지고 나면 모래사장이 넓어지거든. 그때면 논매기도 다 끝나 지금말로 하면 농한기라. 모래사장에서 씨름판을 벌인 뒤 장원을 태우고 동네를 돌며 칭칭이를 불렀재. 기우제 때도 불렀고』라고 말한다. 김씨가 아이들과 매기는 선소리가 바로 기우제때 부른 쾌지나칭칭나네이다.
쾌지나칭칭나네는 전형적인 메나리조로 넓게는 강원도 지역까지 번져 있다. 굿거리장단이어서 흥겹다.
지역과 사람에 따라 쾌자마칭칭나네, 친기랑칭칭나네, 치야칭칭나네, 치치나칭칭나네, 치나친친노세, 칭칭칭나네 등 다양한 소리로 불린다. 경상도 지역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이름은 주로 「칭칭이」. 쾌지나칭칭나네는 60년대초 부산출신의 가수 김상국씨가 대중들 앞에서 부르면서 굳어진 이름이다.
이 노래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왜장을 경계하여 「가등청정 오네」라고 부른데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으나 문화재 전문위원인 이보형씨는 『그게 다 식자우환이 만들어낸 소리』라고 일축하며 『쾌지나칭칭나네는 얄리얄리얄랑성이나 강강술래처럼 흥을 돋우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낸 의미없는 입소리일뿐』이라고 설명한다.
<가세 가세 집으로 가세, 논을 다 맸으니 집으로 가세, 어서 바삐 집에 가서 소짐승을 돌봐야지> <우리가 살더라 얼마나 살까,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남해) <세상천지 벗님네야 이내 말씀 들어 보소 이세상에 나온 사람 누덕으로 나왔는고 아버님전 뼈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양산)같은 노래가 씨름판 후나 모내기, 추수 후 불렸다면 <노자 노자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우리가 이렇게 잘 노다가 황토 흙으로 밥을 삼고 금잔디로 옷을 삼고 자는듯이도 주워지면 어느 친구가 왔다가리 살아생전에 먹고씨고(쓰고)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자> (양산)같은 노래는 잔치 후에 불렸다. 노자 노자 젊어 놀아> 세상천지 벗님네야> 우리가 살더라 얼마나 살까, 가자 가자 어서 가자> 가세 가세 집으로 가세, 논을 다 맸으니 집으로 가세, 어서 바삐 집에 가서 소짐승을 돌봐야지>
모든 가사에 후렴구만 매기면 되니까 여자들이 모여서는 베틀가와 시집살이노래에도 치나칭칭나네를 붙여 불렀다. 가수 김상국씨가 채록한 노래 가운데는 <긴치마는 벗어서 앞나무를 가리고 속치마를 벗어라 뒷나무를 가리라> 처럼 숲속에서 연애를 하는 쾌지나칭칭나네 사랑가도 있다. 긴치마는 벗어서>
『꽹과리를 치면 신이 난다』는 강종상군(6학년)은 칭칭이가 『흥이 나서 좋다』고 한다. 김건모의 「핑계」를 좋아한다는 그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와 이런 노래가 다 좋다.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질이 다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어린이들과 부르니 김대환씨가 <영어공부를 접어 두고 국어공부를 하여 보세 자연공부를 접어 두고 산수공부를 하여 보세> 하고 가사를 매긴다. 몇아이들이 입을 삐죽인다. 박수경양(6학년)이 『산수공부보다 자연공부가 재미있거든요』하고 설명해준다. 영어공부를 접어 두고 국어공부를 하여 보세>
차차 이들이 민요란 마음대로 가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숙제일랑 접어 두고 보리피리나 불어 보세> 라고도 부르게 되리라. 또랑또랑한 아이들 소리가 퍼지는 들녘에는 벌써 보리가 패고 있었다. <글·서화숙기자 사진·이기룡기자>글·서화숙기자> 숙제일랑 접어 두고 보리피리나 불어 보세>
◎경남 산청서 국악보급 김대환씨/“우리풍물 알아야 우리것 소중함 알죠”
『산청사람들은 이제 꽹과리 집어주마, 열에 다섯은 칠 줄 압니더. 첨에는 선비골에 아랫것들 하는 짓을 가리킨다고 말도 많이 들었심니더』
4년전부터 산청에서 풍물을 지도해온 김대환씨(38·석봉농장 주인)는 신등면 평지리 법물부락에서 토종닭을 기르는 농부이지만 수·목요일은 어김없이 군내 중·고등학교와 국민학교를 돌며 풍물을 가르친다.
84년 사업에 실패하고 산청에 들어온 김씨는 살림살이가 잡힌 89년부터 어른들 노는 자리를 찾아 소리를 모으기 시작했고 91년부터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는 『우루과이 라운드가 몰려오니까 농부들은 꽹과리, 장구를 배워서 우리 농산물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이색적인 풍물 옹호론을 펴고 있다.
김씨에게 배운 신안면 의용소방대 풍물패는 면에 소방차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설날에 지신밟기를 해서 6백만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자력갱생하는 두레풍물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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