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많은 국민의 마음이 편치 않다. 문민정부가 약속한 「변화와 개혁」의 전망이 집권 1년여만에 흐려지고 있는 가운데 국정운영 과정에서 정치력의 한계가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전격사임한 이회창 전국무총리는 이달초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정부가 일관된 정책으로 앞을 내다보는 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UR파동,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전선거운동시비, 조계종폭력사건, 상무대이전공사의 비리 의혹등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현 정부의 대처방식에 대해 강력한 자책성 이의제기를 한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국정의 란맥상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현 정부에 귀착시키기에 앞서 지난날 개발독재시대의 적폐에 대해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잘못된 유제와 관행을 가지고 따질 때는 지났다. 정부 나름대로 국정 현안의 해결에 있어 제도미비 및 정책실기가 없었는가 냉정히 자성해야 되리라 본다.
여기서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온 국가경영상의 몇가지 문제점을 제기코자 한다. 첫째, 국가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예지와 철학이 부재하다. 그 단적인 실례로 OECD에의 가입이 GR, BR, 혹은 TR가 가져다 줄 득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형식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정부인사의 원칙이 체제쇄신보다 권력유지에 놓여 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신사고와 실무능력을 갖춘 차세대 전문인력을 키운다기 보다 현상유지에 급급하여 과거의 기득권 관련자를 중용하고 있는 것이 좋은 보기다. 셋째, 국가정책의 일관성과 배합력이 결여되어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 선성장 후분배 정책으로 회귀하면서 환경보전 및 복지증진과 정반대의 경제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경우다.
민주정치의 특장은 정부가 국민이 부여해 준 정당성에 기반하여 국가정책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민생복리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문민정부라는 거창한 포장아래 국정운영의 과오와 결함이 되풀이될 때 정치적 무관심이 아닌 혐오감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냉소주의가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는 문민정부가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자만심으로 인해 효율성에 대해 충분한 노력을 경주하지 못하고 있다고 무조건 매도하고싶지는 않다. 다만 과거의 낡은 권위주의체제를 해체하는 것과 미래의 새로운 민주주의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면서도 그 논리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은 냉철히 직시해주기를 바란다. 세계화의 거센 도전 속에서 체제개혁에 둔감할 때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정부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