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씨가 작년 12월16일 국무총리로 발탁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통령중심제 아래 국무총리의 처신이 얼마나 옹색한지를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은 그가 왜 할 일 많은 감사원장직을 떠나 총리직을 수락했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는 결국 우려했던대로 취임 1백28일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법조에서 30여년 일하는 동안 강직하고 합리적이며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받아온 그는 새정부 출범과 함께 감사원장직을 맡으면서 「성역없는 감사」를 밀고 나가 개혁과 사정에 큰 몫을 했다. 그가 대통령을 곤란하게 할 만큼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소문도 나돌았으나, 그가 국무총리로 발탁되자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강직성과 원칙주의를 높이 평가하여 총리로 발탁했던 대통령은 그가 통치권에 도전하는 월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2일 그를 전격 경질했다. 문민대통령과 강직한 총리의 새로운 관계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다시한번 대통령중심제 아래 국무총리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이회창씨는 우리 시대가 가진 몇명 안되는 「흠없는 인물」이었고, 이 눈치 저 눈치 안보며 소신껏 밀고 나가는 그의 업무스타일은 국민의 눈에 매우 신선하게 비쳤다. 이회창이라는 인물 자체가 「신한국」의 한 상징이었다. 그는 감사원장으로서나 총리로서나 전임자들과 달랐다. 의전총리·방탄총리·얼굴마담총리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던 사람들은 할 말을 하는 총리를 보면서 30년 묵은 체증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문민시대의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를 지켜 보던 사람들은 우선 대통령이 총리를 경질하는 방식에 크게 놀랐다.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질책, 단호함을 강조하는 전격 경질은 국민의 눈에 너무나 권위주의적으로 비쳤다. 이총리의 강직성을 높이 평가하여 중용했던 대통령이 그토록 노할 만큼 이총리의 언행에 잘못이 있었던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다음 총리로 내정된 이영덕 통일부총리에 대해서 각 신문들은 그가 「화합」에 치중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화합이란 물론 좋은 말이지만, 지금 국민이 원하는 총리가 「원만하게 처세하는 화합총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얼굴마담총리의 시대는 지나갔다. 얼굴마담총리를 유지하기 위해 왜 국민세금을 써야 하는가라고 반발하는 국민의 뜻을 읽어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중심제 아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총리의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문민대통령에 걸맞는 총리와의 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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