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은행들은 질·량 양면에서 과도기에 있다. 사람도 성장과정에서 사춘기에 사고가 많듯 지금 우리 은행들도 사고가 많다. 대부분은 대출사고다. 은행지점장등 직원들의 실적경쟁에 따른 무모한 영업행위에서 나온 것이다. 제2의 장여인사건이 바로 상징적이다. 재무부는 사고가 날 때마다 예금경쟁의 지양등 사고방지대책을 내놓았으나 그때 뿐,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구태로 돌아가곤 해왔다. 그런데 이번 외환은행의 한국통신주 응찰가격조작사건은 그런 유형으로서는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 충격과 좌절이 크지 않을 수 없다. 허준은행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수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고의 재연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체제와 의식의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캐어봐야 하는 것은 첫째 외환은행당국이 입찰단가를 써놓는 과정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했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이 정보를 제3자에게 유출했느냐의 여부고, 셋째는 입찰가를 전산조작했느냐 하는 것이다. 은행감독원은 첫째와 둘째 혐의에 대해서 조사중이나 외환은행이 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셋째의 전산조작혐의에 대해서는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입찰마감 다음날 입찰단가를 3만4천8백원으로 입력시키고 그 다음날인 21일 하오 이것을 다시 3만4천6백원으로 변경시켰고, 심지어 허행장이 전산조작이 없다고 발표한 직후인 22일 상오11시께 다시 3만4천8백원으로 재수정했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은 입찰대행 업무를 사실상 파기한 셈이다. 입찰시한이 끝난 뒤 응찰가격을 입력하고 그것도 의도대로 조작했다니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겨놓은 셈이다. 공신력이 추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인이 알았건 몰랐건 『전산조작은 없다』는 행장의 말이 거짓인 것이 드러난 이상 첫번째·두번째 혐의에 대한 부인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부로서는 서둘러 수습에 나서고 있지마는 입찰무효의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정부의 대책은 응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증요법보다는 근치요법을 써야겠다.
입찰대행자들은 입찰에 참여치 못하게 하는등 입찰제도 자체를 개정, 입찰의 공평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나와야겠다. 그러나 뭣 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또는 직업윤리다. 이것이 뿌리내리지 않고는 제도와 체제를 아무리 고쳐본들 백약이 무효다.
정부는 은행들을 산업자본과 분리하여 독립적인 금융자본(금융전업그룹)으로 육성하려는 야심찬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은행 자신들이 이 비전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우선 공신력회복을 위해 거듭 태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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