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화초기 행정지도 안먹히고 금융제도·직업의식도 구태여전/개방시대 은행 도덕성회복 시급 외환은행의 한국통신주 입찰가격조작사건은 금융자율화·국제화시대를 맞아 국내 금융의 현실을 여러모로 곱십어 보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자율시대·개방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은행상의 정립이 절실함을 말해주고 있다.
외환은행은 은행으로서의 두가지 중요한 기능인 「신용」과 「돈벌이」가 상치되는 상황에서 신용보다는 돈벌이를 택해 이번 사태를 빚게 됐다. 이익이 나는 곳이라면 신용에 금이 가더라도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미숙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입찰대행기관으로서 자신도 입찰에 참여하면 「내부자거래」라는 오해를 사 신용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우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통신주식을 사놓으면 불과 1년여만에 30∼40%의 큰 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무리를 감행한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외환은행으로 하여금 이러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느냐는 점이다. 최근의 금융환경은 자율·개방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관치금융·폐쇄금융에서 자율금융·개방금융으로 이전하는 과정에 있는 탓에 금융관련제도나 금융인의 직업의식 자체도 아울러 과도기에 있는 상황이다. 과거의 제도도 아직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로 탈바꿈해 틀을 갖추지는 못했고 은행원들의 직업의식 역시 아직은 구각을 벗어버리고 자율시대에 적합할 정도로 변모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반숙상태의 금융제도와 은행원 직업의식이 화를 불렀다.
재무부는 입찰이 시작되면서 일부에서 외환은행이 입찰대행기관으로서 입찰에 참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일자 『입찰 참가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외환은행에 했다. 외환은행의 입찰참여는 법적으로 하자는 없었다. 따라서 완곡하게 행정지도를 한 셈이다. 종전의 관치금융 분위기에서라면 외환은행은 입찰을 그만뒀을 것이다. 또 재무부의 요청도 더욱 직설적으로 『입찰에 들어가지 말라』는 식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진행중인 금융자율화 바람 탓에 외환은행은 재무부의 요청을 중시하지 않았다. 재무부의 요청은 재무부국장급과 은행임원급간에 이뤄졌으나 허준 외환은행장은 사건이 터진후 재무부의 자제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은행 내부에서도 의사결정권자에게 자제요청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자율화의 초기단계에서 생긴 불행이기도 했다. 또 입찰대행기관은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제도만 구비돼 있었어도 외환은행의 욕심은 「실현될 수 없는 욕심」으로 끝났을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정부보유주식을 이런 식으로 매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행기관을 입찰참여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제도가 불필요했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은행원들의 직업의식 역시 종전까지는 외부의 힘에 의해 「박제」된 것이었다. 관치금융 아래서 중요한 결정엔 정부가 개입을 했고 따라서 은행원들의 직업의식도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따라 타성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정부의 힘, 외부의 입김이 빠지는 상황에서 홀로 서기에는 아직 연륜이 부족하다. 허준 외환은행장은 이번 입찰에서 『은행의 수지만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출발점에서 고의적인 모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가 주당 3만4천8백원이라는 응찰가격이 오해의 여지가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늦게나마 도덕성을 지키려고 궁지를 벗어나려다 더욱 커다란 최악수를 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결국 허행장이 옷을 벗었다. 문책범위는 늘어날 것이다. 금융제도의 완결이나 성숙된 은행원 직업의식의 정립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마련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희생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정책당국자와 은행원들 몫의 과제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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