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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총리의 소신(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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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총리의 소신(사설)

입력
199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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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쪽같은 소신을 자랑하던 이회창국무총리가 22일하오 전격 사퇴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취임한지 불과 넉달밖에 안된다. 이로써 김영삼대통령은 취임1년2개월만에 두번째의 총리경질을 단행한 셈이다. 문민정권이 들어선뒤 기대되던 정치안정이 여의치 않음을 말해주는것 같다. 특히 이총리의 퇴장은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에서 빚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경질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총리는 그동안 청와대가 주도해온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외교 안보 정책결정에 총리가 제외된다는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때문이다. 그는 총리와 내각이 책임과 권한을 아울러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국무총리와 내각의 위상과 기능을 되찾겠다는 결의였다. 그러나 그것은 청와대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졌고 그 도전은 「월권행위」로 규정되어 끝내 실패하고 만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강력한 대통령중심제의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총리간의 갈등관계의 표출을 목격하게 된다. 권위주의시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과거 총리직을 맡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순종에 급급했기 때문에 감히 도전이란 생각도 못했던것이다. 총리의 고유권한인 장관임명제청권이 대통령에 의해 묵살되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민시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조금씩 변화가 엿보였다. 특히 곧기로 이름난 이총리가 취임한뒤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독총리」니 「얼굴마담」이니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국민들에게는 오랜만에 소신총리를 보는것 같아 반가웠다. 그러나 그는 소신을 제대로 펴보지 못한채 꺾이고 말았다. 푸대접 받던 총리의 위상을 제자리로 돌려보려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만것이다.

 그의 퇴장은 자기 소신을 굽혀가면서까지 관직을 오래 차지하려고 연연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신선한 충격이 될것이다. 총리와 내각이 제 자리와 제 일을 되찾으려고 애썼던 노력에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김대통령 자신이 「총리와 내각이 책임을 지고 소신있게 일하라」고 여러번 당부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의외의 전격 조치로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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