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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출발 「현실벽」에 좌절/이회창 총리 재임 백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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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출발 「현실벽」에 좌절/이회창 총리 재임 백28일

입력
199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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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내각장악 지속 추구/정책시행싸고 부처와 마찰도/물문제·UR관련 2차례 사과담화엔 불만토로 지난해 12월 16일 취임한 이회창총리는 취임기자회견에서 『적임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당시 이총리는 『총리재임중 김영삼대통령과 뜻이 맞지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가정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취임초의「그때」는 취임1백28일만인 22일이었고「생각해보자」는 것은「사퇴」였다.

 당시 이총리는『헌법에 규정된 대로 각료에 대한 총리의 임명제청권을 법대로 행사하겠다』고 밝혀 취임초부터 역대 총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러면 이총리는 재임중 어떤 일을 하고자했고 어떤 벽에 부딪쳐 총리직을 물러났을까.

 이총리는 취임5일 뒤인 첫국무위원간담회가 열렸을때 『향후 1∼2년이 문민정부의 승패를 가름할 절대적 시기인만큼 모두가 승부를 걸고 일하자』며 『내각엔 실세장관이니 허세장관이니 하는 말이 나와선 절대 안되니 우리 모두가 실세가 되서 일하자』고 각오를 피력했다.

 『정부의 주요정책은 내가 일일이 챙기겠다』 『모든 부처는 정책결정이전에 반드시 총리실과 협의하라』며 정부정책에 대한 자신의 업무장악을 키워가던 이총리는 그러나 새해들어 폭주하는 현안에 부딪쳤고 그 첫째가 낙동강 수질오염사태였다.

 1월 15일 이총리는 물문제로 『정부로서 거듭 사과드린다』는 자존심을 꺾는 첫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뒤 물관리권을 둘러싼 부처간의 대립에 이총리는『부처이기주의를 용납하지않고 총리실이 이를 모두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부처에서 입법예고하는 것은 반드시 총리실과 사전협의하라』는 공문을 보내 총리실이 부처―청와대사이의 단순 통과기관이 아닌 실질적인 정책승인기관임을 선언했다.

 기존의 총리에게 씌워진 얼굴마담, 방패, 의전형, 실무형등의 총리직을 거부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겠다던 이총리는 그러나 3월부터 주요정책시행을 놓고 청와대등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이총리는 3월초 내무부는 물론 청와대비서실과의 사전협의없이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중단을 지시했고 여권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했다.

 총리실은 이때부터 이총리가 『제대로 일을 하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정책수행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뒤 이총리는 UR협정의 정부이행계획서수정제출과 관련해서 취임 1백여일만에 두번째 대국민사과를 하게됐다. 당시 이총리는 발표직전인 새벽까지『내가 사과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당사자인 경제부총리 또는 청와대가 사과를 자신에게 미루는 것에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시도지사의 사전선거운동시비와 관련해 이총리가 내무장관에게 직접 지시해 회의를 소집하고 사전선거운동을 용납하지않겠다고 경고한 것을 놓고도 관변단체중단지시이상으로 내무부와 마찰을 빚었다.

 이총리는 조계종폭력사태, 상무대이전사업비리등에 대해서도 검·경찰에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했는데 특히 상무대이전사업비리의혹에 대해선 『국민의 의혹이 커지고있으니 검찰은 철저히 수사하라』고 거듭 지시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않자 총리실주변에 『현안이 산적해있는데 내각을 통해 법대로 해결할 생각은 않고 정치적 해결책만 찾고 내각도 눈치만 본다』며 불만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이총리가 가장 크게 느낀 불만은 사퇴의 직접 계기로 알려진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문제이다. 지난 13일 청와대는 이회의의 설치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총리주재의 고위전략회의를 유명무실화했고 이총리가 청와대주례회동에서 강력히 이의제기를 했음에도 총리는 물론 총리실 어느누구도 회의의 정멤버가 되지못했다.

 정책조정회의문제를 계기로 총리실주변에선 『총리가 사임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흘러나왔고  21일 『모든 정책은 사전에 총리승인을 얻으라』는 강경선언이후 결국은 예기치못한 경질로 결론지어졌다.

 이총리는 그 직전 『정부정책이 내각에서 결정되지않고 일부 개인과 소수기관에서 좌지우지된다』며 『내각이 일을 하도록 하지않으면서 책임은 내각에 미루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을 여러번 밝혀왔다.【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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