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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귀의 사상(김지하칼럼/살림의 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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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귀의 사상(김지하칼럼/살림의 길:3)

입력
199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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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고통 현실세계 외면않고 적극적으로 삶의 새질서 창조하는 「돌아가되 돌아가지않는」 여백의 사상/「닫혀진 절집」 꽃지기전 나그네위해 활짝 열렸으면 조계종사태의 귀결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불교개혁의 방향은 어디일까? 문득 떠오르는 선시 한편.

 화락승장폐

 춘심객미귀

 풍요소학영

 운습좌선의

 (꽃은 지는데 절집은 오래 닫혀 있고/ 봄을 찾는 나그네 아직 돌아가지 않는다/ 바람은 학둥지 그림자 흔들고/ 구름은 좌선옷자락에 젖어든다)

 서산 큰스님의 시다.

 춘심객미귀의 미귀라는 어휘가 마음에 닿아 머문다. 봄을 찾는 나그네 「아직 돌아가지 않는다」가 무슨 뜻일까? 아마도 해탈을 지향하되 해탈을 끊임없이 유보하고 장바닥 길바닥 중생의 제도에 정진하는 정신을 미귀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길바닥 생명 구원

 유마는 고통스런 세속속에서의 해탈을 옳은 참선이라 했고 지장은 지옥고통에 빠진 중생을 남김없이 구원할 때까지 해탈을 유보하는 서원을 세웠다. 동북아시아 대승불교와 참선의 핵심은 이류중행, 낮은 데로 나아감과 피모재각, 중생의 삶을 사는 것에 있었다. 사실 신라불교의 진수도 길바닥 장바닥 승려들에게서 발견된다. 대안, 원효, 혜공, 혜숙이 그들이다. 삼국불교는 하나같이 현세불을 기원했으며 화랑의 다른 명칭인 농화향도란 미륵을 따르는 무리를 뜻했고 미륵도 현재안에 오시는 부처였으며 아미타도 흔히 내영불이었다.

 장바닥 길바닥에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 뭇생명을 다 살리는 살림의 정신이었고 「지금 여기」에서 우주생명을 깨달아 실현하며 죽임으로부터 서로 화해시키는 풍류의 불교적 구현이었다. 상처투성이 현실안에서 일용행사속에 순환 생성하는 우주생명의 참된 질서를 깨달아 삶을 개혁하는 사상, 이것을 나는 미귀의 사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완전한 평형과 안정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비평형의 요동속에 자신을 과감하게 개방하여 끝없는 고통속에서 새 질서를 창출하는 비평형적 평형의 생명사상이 바로 미귀의 사상이다. 불교는 개혁을 통해 이 미귀의 사상을 실천하려는 것일까?

 지금 우리의 형편은 한 마디로 혼돈이다. 다차원적인 혼란의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UR에 이어 다가오는 4R(GR, BR, TR, CR)의 두려운 발자국소리,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 남북정세의 전환, 중국과의 접근, 그리고 농촌의 붕괴. 거대한 요동이다. 이 모든 것은 세계사의 대전환으로서 우리 사회에 일대 개벽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킬 추세다. 여기에 대응하여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일반에서 묘책이 아직 서 있지 않다. 모두 다 변해야 산다는 소리만 높을 뿐, 경쟁력이 살 길이라는 외침만 무성할 뿐 정작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정신, 사상의 모색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과 우려가 널리 깔리고 있고 조급하고 졸렬한 의견과 성급한 낙관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서서히 머리를 솟구치는 것이 있다. 종말의 사상이다. 완전한 평형과 안정을 지향하는 사상, 끝을 내려는 사상이다. 일신의 평안을 기원하는 소승적 명상이 유행하고 영생복락의 천국을 구하는 신흥종교가 판친다.

○쉽게 끝을 보려함

 자본주의낙원이라는 테크노피아니 컴퓨토피아가 광고에 흔히 등장하고 환경문제를 제한된 폐쇄사회에서 완벽하게 해결하려는 에코토피아사상이 환경운동가의 입에서도 흔히 튀어 나온다. 공산주의유토피아가 붕괴된 빈 자리에 그를 대신하여 폐쇄적인 소규모 코뮨의 꿈이 젊은이들을 사로잡는다. 보수주의가 다시 득세하고 보다 강력한 국가주의를 요구하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가부장적 권위주의나 에코 파시즘을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은 시장과 언어와 현실에 절망하여 허무주의와 전면해체의 난파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쉽사리 끝을 보려는 사상, 무엇인가 미래에 완전한 평형계를 설정하려는 유혹, 이른바 「돌아가려는」 사상에 대응하여 미귀의 사상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도대체 미귀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미귀의 사상은 「돌아가되 돌아가지 않는」 사상이다. 돌아가되 쉽사리 평형의 몽환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비평형적 요동속에 깊이 들어가 그 요동을 새 질서 창조로 바꾸면서 돌아가되 동시에 돌아가지 않는 사상이다. 미귀는 그러나 미와 귀의 변증법적 종합이 아니다. 그것은 역설이다. 미귀의 시간은 직선적 시간,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상승주의적으로 진행하는 화살과 같은 시간이 아니다. 미귀의 시간은 「지금 여기」이다.

 「지금 여기」라는 창조적이고 실존적인 현실로부터 사방 팔방 시방으로 끝없는 차원변화를 통해 질적으로 확산 진화하는 전방위적 시간이다. 그것은 여러 쌍의 모순이 순환생성하며 연기하는 현존차원에서 그 현존차원을 개입 수정하는 그 밑의 근원적이고 새로운 차원을 개벽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진행한다. 따라서 그 공간은 고립계 평형계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비평형 개방계다. 미귀의 시간은 끊임없이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하여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아니 그것은 「지금 여기」의 끝없는 차원변화이며 무궁한 질적 확산이다. 그것은 순환하면서 진화하는 확충(AMPLIFICATION)이다.

 미귀의 사상은 미완성의 삶의 사상, 여백의 사상이다. 꽉 들어찬 것같은 존재의 질서에 틈을 열어 창조의 시간을 개시하는 사상이다. 미귀의 사상은 그러므로 끝없는 나그네의 사상이며 끝없는 길의 사상, 과정의 사상이다. 우주 어느 곳에서나 살아 있는 「지금 여기」로부터 전방위로 순환 확장하는 나그네길의 사상이다.

 승려와 성직자는 입산(후퇴)―하산(복귀)의 길을 걷는 자이다. 미귀의 사상은 그러매 성직자나 승려 보다는 차라리 재가자나 중생 자신의 나그네길이라 해야 옳을 성싶다. 말하자면 유마경의 세계라 할만하다.

○「지금 여기」가 중요

 미귀의 사상은 「활동하는 무」의 사상이다. 그것은 상처투성이 장바닥의 삶을 통하여 움직이는 「활동하는 무」를 실현한다.

 근원적 차원인 무가 활동하는 것이 바로 현실차원이다. 활동을 떠나서는 무 또한 무다. 삶을 외면한 초월은 허망한 집념일 뿐이다. 요동치는 삶의 장바닥 길바닥에 배를 깔고 피투성이로 포복하는 중에 문득 무를 깨닫고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삶의 사상, 이것이 미귀의 사상이다. 젊은 철학자 김진석(인하대교수·철학)은 이를 두고 「포월」이라 이름붙였다.

 미귀의 사상은 온갖 중생을 다 살려내려는 살림의 길이다. 그것은 인간 자신안에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공경하여 삶에 충실한 자기실현을 하며 이웃인간 안에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있음을 인정하고 공경함으로써 새롭고 화해로운 공경의 공동체를 건설하며 동식물과 무기물안에마저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인정하고 자연을 공경함으로써 생태계의 평화를 이룩하려는 사상이다. 그것은 풍류다.

○선악 모두를 공정

 미귀의 사상은 인간의 선만이 아니라 인간의 악마저도 공경하는 사상이다. 거리를 둔 섬김, 모심은 악을 악으로 놓아두지 않으며 선을 선대로 고립시키지 않는다.

 미귀의 사상은 시장의 성화를 목표로 한다. 장바닥에다 비단을 깔고자 한다.

 시장의 정글법칙을 신령한 시장, 신시의 질서로 바꾸려 한다. 시장을 성화하려면 사고 파는 시장의 질서가 서로 주고 받는 인격적 신뢰의 관계, 곧 따뜻한 경제, 도덕경제로 바뀌어야 한다. 시장의 성화의 첫 걸음은 인간가치의 변화에 있다. 미귀의 사상은 길바닥 장바닥에 선 모든 인간과 중생을 부처로 모시고 부처로 살게 하려는 사상이다. 중생 자신이 중생 자신을 해방하는 것이 미귀의 사상이다. 

 그러나 중생의 삶에는, 시장의 삶에는 끈질긴 타성이 있다. 이 타성을 창의력으로, 성성으로 바꾸려면 깨달음에 서원을 세운 자, 화랑, 그리고 보살의 크나큰 역할이 필요하다. 이른바 「비극적 필연」이다. 춘심객이 필요한 것이다.

 조계종의 춘심객들은 어느 방향으로 개혁을 할 것인가? 부디 미귀의 나그네길로 나아오기를 기원하며 여기 한 중생이 또 한번 서산 큰 스님의 미귀시를 간절한 마음으로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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