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갖고 애중의견 개혁에 수렴”/산에 돌아가는 지혜로 참회·화합/포교·역경·인재양성 제도를 확립□대담=백우영 문화1부장
조계종분규 사태 와중에서 개혁세력의 정신적 지주로 「제2 정화불사」의 기틀 마련에 뒷심이 된 양산 통도사 영취총림방장 월하스님이 21일 총무원에서 열린 개혁회의의 첫 공식회의 참석차 20일 서울에 올라왔다. 찾아오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문밖까지 배웅나갈 만큼 겸허한 월하스님은 구한말 경허스님의 뒤를 이어 한국근대 선 중흥에 밑거름이 된 구하·경봉스님의 법맥을 잇고 있는 종단의 큰 어른이다. 강남에 있는 통도사 서울포교원 구롱사(주지 정우스님)에서 개혁회의의장 월하스님을 만나 개혁 방향과 불교의 시대적 사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서울에 올라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고 싶은 일도 없고 올 이유도 없는데 개혁회의 의장으로 첫 회의에 참석하라고 해서 올라왔어요.
월하스님은 지난 10일 조계사 승려대회에서 개혁회의가 구성됐을 때 의장으로 추대됐었다. 세속의 명리에 초연한 채 영축산을 지켜온 스님이 개혁회의 의장 추대를 받아들인 것은 개혁회의의 주장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월하스님의 측근으로 분규 동안 단식정진했던 정우스님은 『서의현전총무원장의 3선연임 저지와 종단개혁 움직임이 무르익던 3월 중순께 스님을 찾아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젊은 승가까지 죽어서야 되겠는가. 일어서라」고 격려해주셨다』고 저간의 사정을 전했다.
○개혁전기마련 다행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이번 분규에 대해 어떤 심정이었는지요.
▲시대를 이끌고 사회를 구원할 책임과 사명을 지닌 출가자로서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 모든 생명을 부처님같이 존중하라는 불타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자기의 명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출가자의 본분이 아닙니다. 이번 분규를 계기로 종단 개혁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무릇 어느 분야이고 지도자는 올바르게 물러남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종단 지도자는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은 출가자로서 명리에 집착하는 것은 야인보다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불교 뿐만 아니라 시대의 사표를 자부하는 모든 종교의 지도자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보고 들어야 하는 자세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서산대사도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고 다시 그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음을 서원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과거 여러 차례의 종단분규는 책임을 질 자리에 있는 종단의 지도자들이 참회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로서 그런 마음가짐을 외면하는 것은 출격장부의 도리가 아니지요.
―이번 분규가 진행되는 동안 관에서 전임 원장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권력까지 투입되지 않았습니까.
▲이유없이(공권력이) 들어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뭔가 기회를 만들어 불교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끝마무리가 더욱 안좋아졌어요. 승가는 화합의 공동체이고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모인 단체입니다. 이러한 승가정신을 저버린채 종단 내부 문제를 외부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 했으니 끝마무리가 결코 좋을 리가 없었지요.
―서의현전총무원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집착과 탐욕의 노예가 되기 쉽지요. 역사가 그러한 교훈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전임 원장이 잘한 점도 있지만 화합을 해치는 종단의 파행 운영으로 시비가 생겼어요. 총무원장이 어떤 자리인데요. 종도들의 기대에 어긋나면 안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세고 억센 사람이지만 종단 전체의 여론을 귀담아 듣지 않아 불행이 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혁회의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앞으로 개혁은 어떤 길로 가야 합니까.
○비승가적제도 청산
▲지금까지 못한 일을 개혁회의에서 했으니까 훌륭합니다.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개혁회의에서 결정할 것이지요. 새로운 체제가 들어설 때까지는 그들이 잘해 주고 다시 본연의 수행 자세로 돌아갈것입니다. 개혁은 지금까지 종단 내부에서 제기된 비승가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를 청산하고 새로운 종풍이 진작되는 승가를 이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겠지요. 저를 비롯, 개혁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은 부종수교의 원력을 갖고 종단개혁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혁회의의 구성원은 자기를 낮추는 하심을 갖고 사부대중의 여론을 겸허하게 수렴하여 개혁에 반영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만 그동안 잃어버린 승가정신을 되찾고 불교의 자주적인 위상이 회복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개혁의 내용을 설명해주시지요.
▲절짓고 불상과 탑을 조성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포교·역경·인재양성의 3대불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되겠지요. 무엇보다 인재양성은 부처님과 같은 인격을 완성한 출가자를 배출하는 첩경입니다. 이러한 개혁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잘못에 얽매이지 말고 종단 구성원 모두가 승가정신을 회복하여 산으로 돌아가는 지혜와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불교의 사명과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사입은 도둑없어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수행자의 살림살이가 아닙니까. 일의일발로 모든 조사가 정각을 성취했으며 이 깨침의 정신으로 오늘의 중생을 효익케 하는 것이 수행인이 해야 할 사명과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출가자가 명리와 재물을 탐하는 것은 가사입은 도둑이나 다름 없지요.
―종도에게 또 다른 하실 말씀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해 주시지요.
▲모든 종도는 참회와 인욕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화합하는 마음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불교 중흥의 전기를 열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혁범성성의 거울로 삼도록 노력해 주기를 기대합니다.【정리=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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