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발표문 구술·후임 “일사천리”/청와대/“내가 얼마나했지… 넉달이면 많이했군”/총리실/정 부총리 등 잇단 방문 향후일정 논의/통일원/“깐깐한 법률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대법원▷청와대◁
청와대 내에서 이회창총리의 전격 사표수리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2일 하오 5시로 예정돼 있던 김영삼대통령 주재 주례수석회의가 돌연 취소된 하오 4시40분무렵부터였다. 주돈식대변인은 4시45분께 기자실로 와 『6시에 수석들 저녁모임이 있어 대통령께 수석회의를 짧게 끝내자고 했더니 내일로 연기하자고 해 그렇게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고 실제로 이 저녁모임은 예정대로 열렸다.
그러나 주대변인은 하오5시께 박관용비서실장 이원종정무 이의근행정수석등과 함께 급히 김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본관으로 가 김대통령으로부터 이총리경질사실을 들었다. 김대통령은 박실장등을 부르면서 동시에 춘추관의 박영환비서관을 통해 『기자들에게 대기해달라고 알리라』고 지시해 이때쯤에는 뭔가가 있다는게 확실해졌다. 김대통령은 주대변인이 본관에 도착하자마자 발표문안을 구술하고 후임마저 바로 밝혀 사표수리 결심이 이총리의 주례보고전부터 서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총리가 공개적으로 외교안보정책 사전보고를 내각에 지시한 21일 저녁부터 김대통령은 이미 용인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총리가 주례보고를 하러왔을 때는 사표를 지참하지 않았고 보고가 끝난 후 집무실로 돌아가 사표를 제출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김대통령이 이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토록 했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이 관계자는 「즉각 수리」 「외교안보정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이총리의 월권」등을 강조해 사실상 문책경질임을 분명히 했다.
▷총리실◁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지 불과 두시간 만에 이회창국무총리의 경질이 발표되자 정부종합청사 총리실은 완전히 넋이빠진 모습이었다. 특히 이총리가 간부회의를 통해 사표를 제출했다고 발표한지 불과 20여분후에 후임총리의 내정발표가 있자 회의에서 소식을 들은 일부간부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만 뉴스를 통해 새총리의 임명부터 알게된 직원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이총리는 청와대에서 돌아온 직후인 하오4시55분께 감사원장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황영하총무처장관을 집무실로 불러 「자신이 경질되었음」을 알렸다.이총리는 이어 이흥주비서실장을 불러 『사의를 표명했다』고만 밝힌뒤 즉시 간부회의를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간부회의에서 이총리는 『일하려고 부른게 아닙니다. 오늘 사표를 냈습니다. 그동안 고생만 시켰습니다』는 세마디만 한뒤 강형석공보비서관에게 곧바로 『기자실에 사표제출사실을 발표하라』고 지시했고 강비서관이 『사의표명으로 할까요』라고 묻자 『그게좋겠다』고 지시했다.
간부들이 아무말도 못하자 이총리는 『우선 급한불을 끄고나면 이것저것 여러가지 일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면서 『후임총리로 누가 오든지간에 열심히 일해주세요』라며 사실상의 「퇴임의 변」을 밝혔다.
간부들이 물러간뒤 이총리는 이비서실장과 함께 집무실을 정리하며 『내가 얼마나 일했지』라고 물은뒤 이실장이 『4개월쯤 됐습니다』고 대답하자 『많이 했네』라며 상기된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총리가 집무실을 나서자 대기중이던 20여명의 보도진들은 복도를 가로막고 한마디 해줄것을 요구했다. 이총리는 거듭 『할말이 없다』고만 하다가 보도진들이 끈질기게 묻자 『이젠 나도 쉬어야겠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요』라며 걸음을 옮겼다. 이총리는 걸으면서 『사표제출은 자의에 의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잠깐 생각하다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으나 『어제 내각에 지시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도 옳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웃기만 할뿐 언급을 삼갔다.
이총리는 청사에서 삼청동공관으로갔다가 저녁에는 혜화동의 부친댁을 찾아 인사를 했다.이총리는 혜화동에서 삼청동공관으로 돌아와 이실장등 총리실간부들의 방문을 받았으나 곧바로 이들을 물리친뒤 보도진의 면담요청을 사양한채 휴식에 들어갔다.
▷통일원◁
갑작스런 총리내정 소식을 접한 통일원은 직원들 전체가 매우 부산한 가운데 당황해했다.
하오 5시30분께부터 직원들은 일손을 놓은채 사무실과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이부총리의 총리내정에 따른 뒷얘기와 차기 통일원부총리가 누가 될지등에 관해 저마다 의견을 나누었다.
이총리내정자는 하오6시께 기자회견을 마치자 곧바로 황총무처장관과 이총리비서실장, 정재석경제기획원장관등이 차례로 찾아와 향후 일정등을 논의했다.
이총리내정자는 자신의 총리내정이 다소 의외라는듯 「영특」 「영민」이란 말로 이회창총리를 칭찬함과 동시에 자신은 여러가지면에서 부족하다며 겸손해 하는 모습이었다.
이총리내정자는 김대통령이 이날 총리내정 당부와 함께 「중단없는 개혁」과 「화목」등 두가지를 특히 강조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대법원은 대법관 출신인 이총리의 전격사임소식이 전해지자 『결국은 그분 마저도』라며 침통한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한번 뜻을 정하면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이총리의 강직한 성품이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며 『법관 시절부터 법과 원칙에 충실하려한 이총리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애석해 했다.
한 중견판사는 『깐깐한 법률가가 정치판에서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겠느냐』며 『언젠가는 다시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부처◁
과천경제부처에서는 이날 하오 정부총리 주재로 13개부처 장관이 참석한 대외협력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던중 총리의 전격경질 소식을 전해듣고 경악했다.
하오 5시30분께 긴급히 전해온 경질소식을 비서진들이 메모쪽지로 적어 회의장에 들여보내자 정부총리는 내용을 훑어본뒤 낭독하지 않고 옆자리에 그냥 건네줘 장관들이 쭉 돌려가며 소식을 보고는 일순 저마다 표정이 굳어졌다.
▷사회부처◁
내무부는 놀라움속에 앞으로 내무부에 미칠 영향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내무부간부들은 최근 조계종사태나 안가문제등을 의식한듯 이총리와 최장관의 관계가 처음에는 서먹서먹 했는지 모르지만 최근들어서는 아주 돈독했다고 힘주어 강조하기도 했다.【정치·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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