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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나라 이이러니/무숙자(거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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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나라 이이러니/무숙자(거지들)

입력
199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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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빈부격차 해결하기 힘든 사회문제 미국 대도시의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중 하나는 거지들이다. 남루한 차림, 때묻은 얼굴과 손, 초점없는 눈길에 기운도 없고 표정도 없다. 마천루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거지들의 모습은 강대하고 부유한 미국이기에 더욱 아이로니컬하다.

 1백년만의 추위가 몰아쳤던 지난1월에도 뉴욕의 한복판 맨해턴 곳곳에는 어김없이 거지들이 25센트의 동정을 구하고 있었다. 유명백화점으로 둘러싸인 맨해턴 5번가의 성 패트릭성당 앞 번화가에는 백인여자거지가 눈발이 흩어지는 길바닥에 담요한장을 둘러쓰고 앉아 동정을 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1센트짜리 동전으로 길바닥에 「HELP」(도와주세요)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고 행인들의 시선을 끌려하고 있었다. 

 비슷한 장면은 로스앤젤레스 번화가의 한 맥도널드 햄버거점 앞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30대는 넘긴 것으로 보이는 3명의 백인들은 행인들을 향해 연신 25센트짜리 동전 한닢을 구하고 있었다. 잠시후 이들은 햄버거점 안으로 들어와 주문대열에 끼여들더니 햄버거 한개를 사 테이블을 차지하고 끼니를 때웠다. 점심시간 한때의 「작업」으로 햄버거 값을 번것이다. 

 미국의 거지문제는 새삼스러운 이슈는 아니다. 이들에게 붙여진 사회적 명칭은 무숙자(HOMELESS PEOPLE)이다. 무숙자문제는 미국에서 공론화돼 있는 사회문제이다. 

 거지문제는 미국인들이 해결하기 힘든, 그러나 엄연한 미국 현실의 한 단면인 것만은 틀림없다. 모든 것이 풍부하지만 모두에게 풍부하지는 못한 미국적인 빈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백인 거지들이 적지 않은 이유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빈부 문제를 말할 때 이는 곧잘 미국의 고민인 흑인문제와 동일시되기가 십상인게 현실이다.

 로스앤젤레스의 로스앤젤레스가와 5번거리가 만나는 곳은 흑인거지들의 집단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가보면 거지문제가 미국의 일반적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지난 2월중순 일부러 이 지역을 찾았을 때 이들로부터 느낀 것은 적의가 담긴 싸늘한 시선이었다. 자신들을 향한 뿌리깊은 편견과 누적된 모순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었다. 

 이들 노숙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대낮에 자동차안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이 집단촌의 섬뜩한 분위기는 그대로 전달돼 왔다. 【뉴욕·로스앤젤레스=조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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