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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쓰레기(장명수칼럼: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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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쓰레기(장명수칼럼:1667)

입력
199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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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렀던 사람들은 조화처리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을것이다. 영안실 관리인들은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상가에 진열할 수 있는 조화는 10개로 제한되며, 이를 어길 때는 사진을 찍어 고발할 수밖에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래서 화환이 몇개인지 살피면서 빨리 치워야 한다. 대개 먼저 진열했던 꽃을 치우고 나중에 들어온 꽃을 새로 세우지만, 꼭 진열해야 할 꽃들도 있기 때문에 어떤 화환들은 자리를 얻지 못해 들어오자마자 쫓겨나기도 한다. 꽃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문상 온 사람들중에는 자기가 보낸 꽃을 찾지 못해 섭섭해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상가에서는 보낸 이의 이름을 쓴 종이와 리본을 떼내어 벽에 진열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빈소에서 쫓겨난 조화들은 영안실 창고로 옮겨진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영안실 로비나 식당등에 화환을 진열하여 슬픔을 겪는 사람들이 함께 보기를 원하는 가족들도 있지만, 관리인들은 무조건 치우라고 재촉한다. 꽃을 보낸 이들의 정성과 비용, 화환을 만들고 배달한 수고를 생각하면 어이없는 낭비다.

 꽃들은 깜깜한 창고에 갇혀 있다가 쓰레기로 처리된다. 일부는 장지까지 실려 가지만 거기서도 쓰레기가 되는것은 마찬가지다. 조화를 많이 남기고 떠날 때는 쓰레기 치우는 비용을 따로 내야 한다. 꽃은 천덕꾸러기가 된다.

 꽃이 없는 관혼상제란 상상만으로도 삭막하다. 꽃은 기쁨과 위안을 주고, 모든 행사를 빛나게 한다. 가족의 죽음을 황망하게 맞이한 사람들은 친지들이 보내준 꽃으로 빈소를 장식하며 큰 위로를 받는다. 꽃이 없는 빈소는 쓸쓸하다. 그래서 고인을 아끼던 사람들은 고인을 꽃속에 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성을 담아 보낸 꽃들이 곧장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면, 우리는 꽃보내는 일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화환이 10개는 들어올것이라고 짐작되는 경우에는 꽃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상가에 도착하자마자 창고로 실려 나가는 조화의 운명을 알면서 꽃을 보낼 필요는 없다.

 화훼업자들도 살아야 할게 아니냐는 반발도 있지만, 이처럼 비합리적인 소비에 의존하여 공급을 유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화환의 형태도 그렇다. 2단, 3단, 4단으로 한없이 키가 큰 꼴불견의 화환을 만들어 다른 꽃들을 압도하려는 경쟁은 화훼관련업자들이 앞장서서 추방해야 한다. 꽃바구니가 조촐해지면 굳이 10개라는 숫자에 얽매여 규제하는 분위기도 누그러질것이다.

 창고로 직행하는 꽃쓰레기, 그것은 맹목적인 거품문화의 한 상징이다. 우리 생활에서 꽃 소비가 점점 늘어나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꽃은 꽃답게 다뤄져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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