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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전자상가 중관촌(21세기의 주역/세계의 젊은이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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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전자상가 중관촌(21세기의 주역/세계의 젊은이들:10)

입력
1994.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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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사장들 새 기업신화 “야망”/컴퓨터분야등 첨단제품개발 열정 과거 우리나라의 세운전자상가를 연상시키는 북경시 중관촌의 전자상가에서 만난 오묘림씨(32)의 첫인상은 중국경제계의 「무서운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약간 구부정한 어깨와 어쩐지 세련돼 보이지 않는 양복 차림새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대학원생 같았다. 하지만 오묘림씨는 중관촌내의 3천8백여기업중에서 「무서운 아이들」그룹의 선두주자격인 고립공사「총재(회장)님」이다. 컴퓨터회사인 고립공사는 상해 포동과 귀주성등 전국에 15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컴퓨터 관련회사외에 음향기기제조회사, 택시회사, 광천수(생수)회사도 포함돼 있다. 총자산 1억원(한화 93억원상당)에 직원 2백여명으로 중국에선 재벌그룹으로 불릴만하다.

 한 그룹(?)의 총수답게 오총재는 무척 바쁘다. 인터뷰를 위해 매장에서 본사로 이동하려는데 직원이 결재서류를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승용차 앞에 서서 결재를 해야하고 항시 들고 다닌다는 대가대(이동전화기)로 몇차례씩 전화가 걸려와 대화가 끊기곤 한다.

 오묘림씨의 성공담은 70년대 한국의 대우 김우중, 율산 신선호, 제세 이창우씨를 연상케 했다.

 오묘림씨가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27세때였다. 하해(국가가 지정한 직장에서 퇴직, 개인사업을 하는 것)한 같은 연배의 친구들 4명과 각 10만 원씩 출자하여 만든 50만원을 자본금으로 고립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다. 오묘림씨는 북경대 법과출신으로 컴퓨터와 무관했지만 컴퓨터를 전공한 친구를 믿고 또  컴퓨터의 무한한 시장잠재력을 겨냥해 컴퓨터소프트웨어 개발업에 뛰어든 것. 처음에는 컴퓨터를 수입, 자신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심어 팔았다. 당시 전직원은 자신을 포함해 모두 13명이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민영기업을 꾸려나가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고 오묘림씨는 회고한다. 일부의 특혜를 제외하면 자금동원과 기술인력 충원, 원자재구입등 모든 면에서 민영기업은 국유기업보다 불리했다.

 그러나 회사는 날로 커져 가는 중국의 컴퓨터 시장을 배경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고립공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중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상품은 영문―중문 자동번역 소프트웨어이다. 사회과학원의 유탁(60)교수가 30여년간의 연구끝에 완성한 시스템을 고립공사가 상품화한 것이다. 지난 한해동안 이 상품만으로 2백만원을 벌어들여 올해말에는 투자비 4백만원을 모두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오총재의 전망이다.

 현재 75%의 번역정확률을 1년내에 85%로 올린다는 목표이며 소형번역기와 몽골―중어, 러시아―중어, 독일―중어등의 자동번역 소프트웨어도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중관촌에는 무려 1천여개의 기업이 새로 설립됐다. 하루 3개꼴로 설립된 이들 기업중 민영기업 창업자 대다수는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의 젊은이들이다. 김우중과 신선호를 쫓았던 70년대 우리의 젊은 사업가들처럼 이들도 제2의 오묘림, 제3의 오묘림을 꿈꾸며 허름한 사무실에서 밤을 지샌다. 이들에겐 성공의 길이 순탄한것만은 아니다. 사업상으로는 오묘림의 선배격인 대성 신기술산업 유한공사의 총재인 백원씨(39)의 경험은 이들이 택한 길이 한편으로는 모험임을 알려준다. 도시철로신호설비제조와 컴퓨터 CAD수입등으로 이제는 사업 기반을 단단히 굳힌 백씨가 하해하여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이다.

 백씨는 두차례의 좌절을 맛본후 90년 현재의 기업을 세워 기반을 잡았다. 특히 하해초기 6개월간은 한푼도 못 벌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참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중관촌은 야망을 가진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기회와 모험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대성 신기술산업 유한공사의 직원중 35세 이상은 총재인 백씨가 유일하다. 고립공사의 경우도 직원이 대부분 30세 전후이며 기술개발팀은 거의 전원 30세 이하의 전문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소지자다. 물론 보수도 높다. 대성 신기술산업 유한공사의 직원 월급은 국유기업(국영기업)의 3∼4배의 수준이다. 

 중관촌에는 창의력이 최고 덕목으로 꼽힌다. 대성 신기술산업 유한공사에서는 국유기업에서 매일같이 있다시피하는 회의를 대폭 줄여버렸다. 1년에 한번 직원 전체회의를 하고 한달에 한번 간부회의를 통해 전체적 업무계획을 결정할 뿐이다. 고립공사는 「창조는 바로 생명이다」(창조취시생명)라는 사시를 내걸고 직원들의 자발성을 고무하고 있다.<북경=유동희특파원>

◎중관촌은 어떤곳/88년지정 「신기술 산업개발시험구」/6년만에 3천8백여개 기업 밀집

 『처마밑에서 생겨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반 시설이 부족했던 중관촌은 이제 기반 시설정비를 통해 국제화 산업화라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관촌이 88년 5월 중국 최초의 첨단기술개발구로 지정됐을 때부터 이 지역개발에 참여해온 왕사홍 시험구 주임(여·48)은 「중관촌의 오늘」을 이렇게 말했다. 당시 몇십개에 불과했던 기업수가 현재 3천 8백개로 늘어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외자유치를 위해 1·5㎦의 잘 정비된 산업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관촌의 공식명칭은 「북경시 신기술 산업개발시험구」로 북경대, 청화대등 대학들이 몰려있는 해정구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1백㎢이다.

 심천, 주해등 해안특구가 홍콩, 마카오에 인접한 지리적 비교 우위를 활용한 것이었다면 중관촌은 인적 비교우위를 활용하기 위한 내륙의 특구인 셈이다. 간소한 기업 설립절차, 세제 혜택등 해안특구와 동일한 우대정책이 적용된다. 93년말 현재 등록된 3천8백여 기업중 외국투자기업은 7백개이며 나머지 기업의 많은 비율을 민영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시험구지정 이전부터 중국 최대의 전자시장이 이곳에 있었던 관계로 총 기업의 50%가 컴퓨터등 전자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나머지도 생명과학, 신소재등 첨단 과학기술분야와 관련된 기업이 대부분이다.

 왕사홍 주임은 중관촌이  급속도로 발전한데 대해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대학과 최대의 전자상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기술·정보·인적 측면에서 조건이 좋았습니다. 또 소득세감면(다른 지역의 33%에 비해 절반인 15%), 창업후 2년동안 면세등 해안특구지역과 동일한 각종 혜택을 부여한 것이 주효했지요. 마지막으로 첨단기술을 지닌 중소기업이 많아 시장변화에 대한 적응이 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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