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책내고 북한핵에도 깊은관심 표명 보스니아, 남아공, 르완다, 소말리아….
「냉전시대」를 이은 「내전시대」에 당대 외교의 대가임을 자임하는 헨리 키신저 전미국무장관(70)이 국제외교무대에 재등장했다.
키신저는 최근 11번째의 역저 「외교」(DIPLOMACY)를 펴낸 데 이어 12일부터남아공을 방문해 유혈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중재에 나서는가 하면 북한핵문제 보스니아사태등 굵직한 외교현안에도 참견하고 나섰다.
더구나 지난주에는 한 라디오방송 토크쇼에 나와 빌 클린턴미대통령이 외교에 관한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뒤 『한시적으로 관직을 맡아 달라면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밝혀 관계 복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73년부터 77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그동안 뉴욕에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라는 자문회사를 차려 한국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외교 및 투자상담을 해주며 LA타임스 신디케이트를 통해 기고활동을 하면서 비교적 눈에뛰는 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7일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신간 「외교」를 선전하기 위해 마련한 강연회 개최를 계기로 현실외교에 다시 뛰어든 것이다.
키신저는 자신의 저서중 제19장 「봉쇄의 딜레마―한국전」이라는 대목에서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소봉쇄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6·25를 「제한전」으로 인식하고 참전했으나 공산주의의 팽창저지라는 정치적 목적을 벗어나 한반도 통일이라는 군사적인 목표를 추구하다가 결국 「결론없는 전쟁」으로 끝을 맺게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제한전에서 군사적인 목표를 앞세우면 전면전에 빠져들게 되고 정치적인 목표를 우선시하면 전쟁의 원래 목적을 뒤로 한 채 협상에서 교착상태에 이르게 된다』면서 『제한전에서는 처음부터 군사·정치적 목표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키신저의 이같은 지적은 미의회와 언론 일각에서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대북 제한공습 가능성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 나와 한층 관심을 끌고있다.
키신저는 트루먼 당시 미대통령이 중국과의 접경에서 「수백마일」떨어진 지점에서 유엔군의 북진을 멈추고 협상을 제의했더라면 모택동의 참전을 막고 6·25를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모두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제한전 수행에 대한 독트린이 없었던 트루먼은 전쟁의 와중에 갈팡질팡하다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에 의하면 6·25는 북한 소련등 공산권과 미국등 쌍방 모두에 의한 「2중의 오판」에서 비롯됐다. 즉 김일성과 스탈린은 미국이 중국까지 공산주의자들에게 내준 상황에서 그들의 남침 정도는 「외교적으로 항의하는 선에서」용인할것으로 오판했으며 미국은 미본토와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기습공격 가능성에 전념하느라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것이다.
한편 키신저는 최근 NPR라디오방송의 대담프로를 통해 미국은 북핵문제와 관련한 국가이익을 철저히 계산한뒤 이에 대처해야 할것이라면서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에 내심 미국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 문제에 관한한 중국과 보조를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됐다』면서 『이제는 중국 일본 유럽 러시아등과 힘의 균형을 유지해가며 이들 국가중 어느 한나라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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