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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혁 요체는 「대중살림」이다”/석지명 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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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혁 요체는 「대중살림」이다”/석지명 청계사 주지

입력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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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밥에 눈멀어 새로운 혼란 없어야 총무원장스님이 드디어 사표를 제출했다. 무아의 텅 비움과 철저한 버림 속에서 궁극의 얻음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뒤늦게나마 실천하기 위해서, 그리고 불교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견되던 사임이 발표되었다.

 지난 20여일 동안 불교도들은 낯을 바로 들고 거리를 다닐 수가 없었다.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조계사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방송을 들어 보니 전화를 걸어온 이들이 한결같이 터지려고 하는 분통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찰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불교인이나 시민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법상에 올라서는 당당한 목소리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고 가르치는 스님네가 속인만도 못한 몰상식한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자, 과거는 이미 흘러갔다. 지금 와서 과거 타령을 해서 무엇을 하겠나. 그러나 총무원장이 사임하는 이 시점에 불교도들의 또 다른 걱정은 「눈앞에 놓인 잿밥」 때문에 벌어질 지도 모를 새로운 혼란이다. 『종권을 잡기 위해서 여러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지 않을까』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절 집에는 「독살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 사회에서는 흔히 사용되지 않는 특수용어이다. 한 사찰의 주지가 같이 사는 대중과 신도들의 비판이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는 사찰운영방식을 뜻한다. 예로부터 절 집에서는 독살이를 경계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이 독살이가 공공연히 행해졌다. 이번에 조계사 모임에 참가한 한 젊은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1천만의 한국불교도가 몇몇 사람에게 눌려서 꼼짝 못하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독살이의 반대말은 「대중살림」이다. 주지 1인의 전횡이 없이 사찰의 대중과 신도 본위로 절을 운영해 나간다는 말이다. 나는 한국불교 개혁의 요체가 이 대중살림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왜 그런가. 대답은 간단하다. 말사, 본사, 총무원의 운영이 완전히 공개되고, 주지권이나 종권을 가진 이가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할 때, 주지권이나 종권을 탐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가령 어떤 말사의 모든 행정적 경제적 관리를 신도들이 담당하고, 주지는 기도와 법문만을 전문으로 담당하게 할 경우, 이같은 주지직은 「부전살이」와 같게 된다. 부전살이란 어느 절에 법당 일만 돌보면서 약간의 보시만을 받으며 수도생활하는 소임을 뜻한다. 주지직이 부전살이가 되고, 주지와 수행승에 대한 대우가 아무런 차별이 없게 되면, 수행시간을 뺏기는 주지직을 가지려고 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옛날처럼 어떤 이에게 주지직을 맡아 달라고 사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말사주지가 인기가 없으면 총무원은 주지직 배분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고, 주지직과 관련된 부정 의혹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스님네들이 신도의 사찰운영 참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주된 이유는 스님네와 신도들이 한탕으로 어울리면 스님네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지고 불심을 닦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승복을 입었다는 그 사실을 우선적으로 내세워서 신도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솔선해서 실천함으로써 대중을 인도해 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 조계사 개혁운동에 참여한 스님들 중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두드러진 승려생활 형태를 엿볼 수 있었다. 사찰의 불사에 관여한 경력이 있는 한 어른은 처음에는 개혁을 외치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는가 하면, 40여년 동안 눕지 않고 수행을 해온 한 어른은 초지일관 흔들림이 없었다. 국민이 기대하는 지도자는 바로 이런 어른일 것이다.

 대중살림을 전제로 해서 개혁운동을 전개할 총무원의 진용이 새로이 구성된다면, 총무원장 자리를 탐하기는커녕 너도나도 사양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져서 일반국민들이 염려하는 혼란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대중살림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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