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지역마다 다른 가사… 애환 절절이/허기진 배 신명으로 채우고…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 내몸이 이래뵈도 정승판서의 자제로 팔도감사를 마다하고 각설이로 나섰네> 각설이타령을 들으러 충남 부여로 나선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논산으로 빠져나와 부여읍으로 들어서니 「백제 고도 부여」「백제 정신 이어받아 2천년대 주역되자」는 거대한 아치형 입간판이 반긴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 내몸이 이래뵈도 정승판서의 자제로 팔도감사를 마다하고 각설이로 나섰네>
부여라면 남녘땅 중에도 가운데이다. 봄이긴 하지만 아직 푸르른 것은 쑥과 냉이 정도이고 보리도 겨우 손가락길이만큼 싹이 나있으니 지금이 예전 사람들이 말하던 보릿고개일 것이다.
일년 내내 허리 펼 새 없이 땅을 파던 이들도 곡기가 부족한 때에 동냥을 하러 나가니 거지들의 마음이 오죽 면구스러웠을까. 죽지도 않고 또 와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수그리면서도 명문거족의 자식이지만 오로지 거지의 자유를 사랑하여 팔도 구걸행각에 나섰다고 너스레도 떨어보는 것이다.
각설이 타령은 우리나라 민요 가운데 아리랑 다음으로 친숙도가 높은 노래이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각설이 타령을 들으러 부여로 나선 것은 부여읍 용정리의 소리꾼 하운옹(81)을 찾아서였다. 지난 92년 「부여 호상소리」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탄 이마을 소리패 가운데 선소리꾼인 하옹은 타고난 총기로 『못 외우는 노래가 없다』는 노익장이다.
하옹은 지금도 이른 아침이면 밭으로 나가는 농투산이. 그런 그가 각설이 타령을 유창하게 읊는 것은 워낙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라면 뭐든지 배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동네에 유성기가 새로 들어와도 주인이 날더러 찾아오라고 했어』
우리나라 민요가 대부분 3분박인데 반해 각설이타령은 목도소리와 더불어 경쾌한 4분박에 속하는 민요이다. 그만큼 흥겹다.
각설이타령은 거지가 신세를 한탄하는 신세타령, 장마다 특징을 주워섬기는 장타령, 숫자풀이 한문풀이 국문풀이 떡타령 돈타령등 가사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뉜다. 신세타령은 흔히 숫자풀이와 더불어 나타나며 본조각설이로 불리기도 한다.
신세타령 숫자풀이 장타령 돈타령등이 혼재되어, 부르는 이의 입담에 따라 양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각설이 타령이 가장 먼저 채록된 것으로는 판소리 「변강쇠가」의 한 대목을 꼽는다. <잘한다 잘한다 초당짓고 한 공부가 실수없이 잘한다. 동삼 먹고 한 공부가 진기있게 잘도 한다. 기름되나 먹었느냐 미끈미끈 잘 나온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한다>잘한다 잘한다 초당짓고 한 공부가 실수없이 잘한다. 동삼 먹고 한 공부가 진기있게 잘도 한다. 기름되나 먹었느냐 미끈미끈 잘 나온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한다>
봉산탈춤에도 각설이타령이 한대목 보인다.
<밥은 바빠서 못먹고 죽은 죽어서 못먹고 술은 수리수리 잘 넘어간다. 저리시구 저리시구 잘한다 품바나 잘한다. 앉은 고리는 등고리, 선고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고리, 나는 고리 꾀고리, 입는 고리 저고리, 품바나 잘한다>밥은 바빠서 못먹고 죽은 죽어서 못먹고 술은 수리수리 잘 넘어간다. 저리시구 저리시구 잘한다 품바나 잘한다. 앉은 고리는 등고리, 선고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고리, 나는 고리 꾀고리, 입는 고리 저고리, 품바나 잘한다>
구전 각설이 타령은 대개 이 가사의 변용이다. 특히 장타령에서는 지역에 따라 지은이의 창의성이 강조된다.
강원도라면 <신남장을 볼랬더니 심심타가나 못보고, 두촌장을 볼랬디 둘리다구다가 못봤네, 두아니 장을 볼랬디 짚(깊)어서두나 못봤네. 칠응리장을 볼랬디 지겨서두나 못봤네, 성상장을 볼랬디 성을 쌓다가 못보고, 홍천장을 볼랬디 붉어서두나 못봤네> (홍천)같은 가사가 나온다. 신남장을 볼랬더니 심심타가나 못보고, 두촌장을 볼랬디 둘리다구다가 못봤네, 두아니 장을 볼랬디 짚(깊)어서두나 못봤네. 칠응리장을 볼랬디 지겨서두나 못봤네, 성상장을 볼랬디 성을 쌓다가 못보고, 홍천장을 볼랬디 붉어서두나 못봤네>
경상도에는 <바람이 분다 풍구(풍기)장 문지가 일어서 못가고 대구장을 볼라하니 아가리가 너무 커서 몬보겠고 상주장을 볼랐더니 초상이 나서 몬보겠고> (문경)같은 가사가 전한다. 바람이 분다 풍구(풍기)장 문지가 일어서 못가고 대구장을 볼라하니 아가리가 너무 커서 몬보겠고 상주장을 볼랐더니 초상이 나서 몬보겠고>
전라도라면 <벌벌떤다 벌교장은 누비옷 없어서 못가구요. 장사많다 장성장은 힘에 부쳐서 못간다> (무안 함평)로 나온다. 벌벌떤다 벌교장은 누비옷 없어서 못가구요. 장사많다 장성장은 힘에 부쳐서 못간다>
각설이타령의 유래에 대해서는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다. 김시라씨는『호남지방에 일부 전승되기로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의 지배계층이 떠돌이 나그네가 되어 걸인행각을 벌인 것이 장타령의 유래』라고 전하며 그 근거로 그가 채록한 「떠르르르 돌아왔소. 백사리가 고사리라, 당사리를 짊어지고 똘똘 몰아서 실타령」이라는 가사를 든다.
이 가사의 뜻은 대충 「백제사람이 고구려사람이라, 당나라 사람을 짊어지고 똘똘 몰아서 신라타령」이란다. 그런데 이 내용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의미풀이가 어려워지니까 「각설이가 먹설이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김씨의 추론이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각설이타령은 전형적인 경상도 노래이다. 민요연구가인 이소라씨(문화재 전문위원)는 『각설이 타령의 주요음은 미솔라도레 이며 라음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메나리목』이라며 『메나리 목은 경상도와 강원도의 민요와 동해안지방 무가의 선율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각설이 타령의 진원지도 경상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하옹이 사는 농정리는 백제멸망과 연관이 있다. 백마강의 용이 백제를 지키고 있어서 백제침공이 어렵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부소산에 올라 말대가리를 미끼로 용을 나꿔챘다고 한다. 그 용이 처음 떨어진 곳이 바로 농전리, 지금의 농정리이다.
『거지는 일제시대에 제일 많았어. 밥 얻어먹는게 미안하니까 신명나게 장타령을 불렀지』라는 하옹의 말에 같은 마을 소리꾼 고인환씨(66)는 『지금이야 농부가 거지인데 누가 농촌을 찾아오겠어요』하고 비꼰다.
식민지시대와 한국동란이라는 가파른 역사의 고비를 손끝이 다 닳도록 땅만 파며 살아온 이들, 빌어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의 힘겨움을 이기기 위해 각설이타령을 즐겨온 이들에 의해 우리는 이만큼 잘 살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고도부여에서 각설이 타령을 듣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서화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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