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사람들 중에 말표나 기차표 고무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말표고무신은 6·25전란을 겪은 중장년층의 마음 한구석에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시장에 다녀온 어머니가 건네준 고무신은 온 동네 자랑거리였고 가난한 집 아이들의 소원이 이 신발을 신는 것이었다. 신발이 닳을까봐 고무신을 든채 맨발로 다닌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다. 유세장의 가장 흔했던 선심이 막걸리와 고무신 한 켤레인 때도 있었다. 검정고무신이 사라진지 30여년이 지났다. 세월의 흐름속에 고무신을 만들던 공장들은 운동화를 만드는 공장이 됐고 이 공장들이 우리나라를 신발왕국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대표적인 신발공장들이 속속 문을 닫고 그공장터가 모두 아파트촌으로 바뀌고 있다. 기차표고무신을 만들었던 화승이 공장터에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청약을 받았다. 왕자표신발을 생산하던 국제상사의 부산공장터는 이미 아파트조합원들에게 매각됐다. 말표고무신의 태화도 이달말께 공장터를 아파트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아파트촌으로 바뀌게 될 신발공장터를 지켜보는 부산시민들은 부산경제를 대표하던 신발산업이 완전히 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부산시민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한자락이 잘려나가는 감상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공장문을 닫으면서 뜯어내는 기계는 모두 동남아로 실려나가고 있다. 현지에서 생산된 신발이 우리나라로 역수입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국내 신발산업의 공동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됐다. 품질과 가격 모두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국내 신발산업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게된 것은 그 책임이 정부와 기업인 모두에게 있다. 정부는 분별력 없는 산업정책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산업이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걸 방치했다. 기업인들 역시 수십년 지켜온 기업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땅장사 집장사로 변신했다.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한 정부와 일류의 경쟁력을 스스로 버리는 기업가들이 완전개방을 맞게 된 국내산업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걱정스럽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