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국이 움참마。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UR협상부작용 파동으로 김량배 농수산장관이 해임되고 사전선거운동시비로 박태권 충남지사가 자진사퇴 했다. 여권은 이들의 「읍참」으로 난국이 타개수순으로 가닥이 잡혀갈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사전운동과 관련된 다른 인사들의 거취와 혼선을 거듭해온 외교안보팀의 전면개편등을 여전히 현안으로 삼고 있어 정국은 「읍참」을 더 필요로 할지 향방을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읍참마속 고사는 인구에 회자되듯 삼국지의 가정전투에 어원을 두고 있다. 서기228년 척의 승상 제갈공명이 제1차 북벌할 때였다. 위는 사마의를 중용해 반격했다. 제갈승상은 아끼던 마속(190∼228)에게 2만 병사를 주어 요해처 가정을 눌러 적의 진로를 차단케 했다. 마속은 군령을 어기고 산상에 진쳤다. 위의 장합이 5만병력을 몰고와 에워싸니 마속은 짓쳐 내려가 싸워보기는 커녕 오히려 물길이 끊겨 열흘도 못견디고 자멸하고 말았다. 「가정실수」의 영향은 전 작전지역에 파급돼 제갈승상마저 서성현에서 「공성계」로 겨우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갈승상은 군재를 열어 사정을 떨치고 마속을 통곡하며 참수했다.
가정은 오늘날의 감숙성 천수지구 진안 동북 90리께 농성진이다. 교통이 사통팔달로 편리한 모피 약재 과일등의 집산지다. 마속의 진이 있던 곳은 시가지 남쪽의 거대한 짚섶처럼 생긴 농산. 높이는 2백정도이나 계곡은 제법 깊고 숲이 울창하다. 정상을 오르면 축구장 몇개 크기의 세석평전이 있어 당시의 전투상황을 말해주듯 하다. 마속을 베며 제갈승상이 흘린 눈물에는 한 인재를 잃는 아픔과 함께 그를 경솔히 중용함으로써 그의 일생과 국사를 망치게한 스스로를 통렬히 꾸짖는 회한이 배어있었을것이다.
문민정부는 출범이후 개혁작업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82%로 여태 높다. 그러나 인사문제에 관한한 그동안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측근 인사들의 능력과 자격논란에다 도덕성과 무책임성까지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상적인 인사의 요체는 다름아닌 적재적소에 있다. 일개 유장으로 관우 장비의 용맹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마속 따위를 선봉장으로 내세우는 일같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인사로 그렇잖으면 장래가 촉망될 인재의 장래를 그르치게 한다면 이 또한 손실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잘못된 인사는 국익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해 심각성을 더한다. 문민정부는 1년을 넘기며 「한 차원 높은 정치」의 지향을 공언하고 있다. 이의 빠른 성취를 위해 차제에 심모원려의 용인술을 정착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할것이다.<통일부장>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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