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와 슬기로 진정한 변화를… 이 땅의 모든 산하에 봄이 왔습니다. 매화가 꽃을 피워 향기를 뿜은지는 이미 오래고, 벚꽃 진달래등 갖가지 꽃들이 피고 나무에는 새싹이 파랗게 오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몸도 봄의 기운을 받아 그렇게 밝고 활기찰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봄을 맞이한 삼라만상은 봄답게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1천6백년의 고목이 된 불교라고 해서 봄이 오지 않을리는 없습니다. 요즘 이곳 범어사에는 거룩한 수행자가 되기 위해서 새로 발심하여 출가한 행자들이 2백70여명이나 있습니다. 지도하는 30여 스님들의 무서운 장군죽비 밑에서 매일 매일 피나는 훈련을 받습니다. 어제는 산문밖 1쯤에서 대웅전의 부처님께 다가가는 1보1배의 의식을 치렀습니다. 얼마나 성스럽고 신심이 복받쳤는지 지도하는 스님들도 행자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눈물과 땀은 뒤섞여 온 몸을 적시고 신심에 의한 환희는 화창한 봄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오늘은 그간의 공부를 평가하는 시험일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내일의 회향을 위한 철야 3천배를 올리게 됩니다. 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두 때의 식사 또한 거칠기가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한국불교에 새봄이 온다는 소식입니다.
오늘의 일련의 상황을 맞이한 불교에 대해서는 다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굳이 혹을 붙이고 부스럼을 한번 더 긁는 말을 한다면, 좀 역설적이기는 하나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라는 뜻을 승단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즉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열쇠는 바로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대저 중노릇 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리오. 잘 먹고 잘 입기 위하여 중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되어 나고 죽는 것을 면하자고 하는 것이니… 설사 세상 일을 똑똑히 분별하더라도 비유하건대, 똥덩이를 갖고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을 가지고 흰 옷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기억이 새로울 것입니다.
남의 잘잘못을 열심히 시비하다가도 가끔은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수행하는 수행자의 신분이라는 생각도 좀 해 주십시오. 그 준엄한 가르침을 다 잊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태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이미 저질러진 일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자고 시작한 일에 불교의 모든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서 감출래야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상황에까지 왔습니다. 무엇으로도 이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어디서 무엇으로 이 상처를 보상받겠습니까. 이땅의 불교를 생각해서라도 조금씩 양보하고 슬기를 발휘해서 현명하게 풀어야겠습니다.
이런 상황에 원로의 의견은 어떻고 종회의 의견은 어떻고 또 개혁파의 의견은 어떻다든지, 차기 총무원장에는 누구누구가 거론된다든지 하는 암담한 소식들만 들려오니 행자들의 교육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으로 기진맥진할 뿐입니다.
정통성을 우위에 두든 승려대회의 결의를 우위에 두든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마음이 없다면 불교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개혁이란 것도 그 진정한 의미는 일찍이 말했듯이 혁범성성에 뜻이 있습니다. 혁범성성이 아니고는 불교적 의미의 개혁이란 없으며 발전 또한 운위할 수 없습니다.
이만한 진통과 아픔을 겪었다면 이제는 찬란하고도 성스러운 불교의 봄을 맞이해야 할 줄 믿습니다. 저 행자들의 힘찬 독경소리에 맞춰 불교는 일어나야 합니다. 춘래불사춘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화기가 넘치고 선하기만한 벗들의 모임 「승단」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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