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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움」 예찬(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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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움」 예찬(1000자 춘추)

입력
199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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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전쯤으로 기억된다. 친지집을 방문하였다가 탁자위에 놓인 연등을 보았다. 그 집 주인은 불교신자였고 그때가 5월이었나 보다. 절부근 야외에 매달린 빛바랜 연등의 풍경에 익숙해 있던 내 눈은 실내에 장식물같이 들여놓은 연등의 강렬한 색채에 압도되어 『어머! 촌스러운 분홍색이네』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 말해 놓고는 주인에게 미안하여 얼굴을 붉혔다. 그 말은 흉보려는 의도도 아니었고 나쁜 의미도 아니었다. 어릴적 어머니께서 설빔으로 지어 주신 분홍치마 노랑저고리의 치마색깔과 꼭같은 꽃분홍색이어서 갑자기 아득한 유년의 뜰로 돌아간 듯한 그리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내 마음속에 번지고 있는 그림을 알리 없는 주인이 그 표현에 언짢아 할까봐 미안했던 것이다.

 그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영원히 가버렸지만 내 딸에게 그 기쁨을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다음해 설빔을 분홍치마 노랑저고리로 해주리라 작심하였다. 그러나 시장에선 그렇게 소박한 설빔은 찾아낼 수 없었다. 아무리 단순한 것도 최소한 색동을 변형시킨 장식이나 금박 은박이라도 찍혀 있는 것이었다.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애써 마련한 분홍치마 노랑저고리를 입은 딸아이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차려 입은 화려한 한복에 비해 초라하다 못해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추억찾기에 아이가 희생된 꼴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나는 아직까지 촌스러움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철들 무렵 시골에 피란갔을때 그곳 아이들로부터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림받으면서 이미 도시성의 한계를 알아버린 것일까? 까도 까도 알맹이는 없이 반들 반들하기 만한 도시화의 속빈 세련성에 대한 거부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상품에서 포장이 중요하듯 세련된 외모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알맹이다. 한국인의 알맹이는 덜 도시화된 촌스러움으로 대변되는 그 무엇, 인정과 의리라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된 전통적 인간상이 아닐까 싶다. 정옥자<서울대국사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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