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있는 정치위해선 불가피” 판단한듯/조계종사태 엄정처리 지시도 같은맥락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4일 우루과이 라운드(UR) 최종이행계획서 수정파문의 책임을 물어 김량배농림수산부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5일에는 이회창국무총리가 UR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사과했다. 이총리의 담화발표는 물론 지난 1일 김대통령이 전국무위원과의 청와대 조찬자리에서 『내각은 진실을 국민앞에 밝히고 국민을 납득시킬것은 납득시키고 사과할것이 있으면 사과해야 할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한데 따른것이다.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 있던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김대통령의 수순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김대통령이 일본과 중국순방에서 귀국했을 때 정국은 UR 파동, 민주계 출신 인사들의 사전선거운동파문과 최형우내무장관의 실언, 조계종 폭력사태, 외교안보정책의 혼선노정등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난마처럼 얽힌 정국은 김대통령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당연히 김대통령의 난국 수습방안에 정가의 촉각이 모아졌었다. 그리고 그 수습책은 일단 문책과 사과라는 정면돌파 방식으로 나타났다. 난국을 만나면 결코 피해가거나 우회하지 않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조계종 폭력사태에 대해 당초 경찰이 멈칫하는것 같다가 적극적인 수사태도를 보인것도 김대통령이 지난 2일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간에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힌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
김대통령이 이 사태에 대해 엄정처리를 강조한것 역시 정국돌파와 맥락이 닿아있는 것이다. 사전선거운동으로 물의를 빚은 최기선인천시장과 박태권충남지사의 처리문제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박지사는 5일 자진사퇴했다. 김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고 사전에 여권수뇌부와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핵심측근인 최시장 처리에 있어서도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외교안보정책의 혼선을 막기 위해 청와대 외교안보팀의 총괄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것도 정국수습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정국수습책은 또 다른 한 줄기로도 나타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김대통령은 지난 2일 민자당간부들과의 청와대 조찬 자리에서 당에 대해 『한 차원 더 높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전선거운동이다, 아니다. 관례다, 아니다등의 차원을 떠나 새 선거법정신에 맞는 새바람을 야당에 앞서 여당이 먼저 일으켜야 한다는 뜻일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6일 있을 민자당 강남을 지구당 개편대회부터 『이것이 바로 정치행사다』라는 새 패턴을 선보일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서부터 새 정치의 솔선수범을 보여 여권구성원들에게 다짐의 효과를 주면서 야당 공세의 예봉도 막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야당의 대춘투 공세는 지금 더 기세를 올리고 있고 좀체 식지 않을것같다. 시점상으로도 4·19, 5·17로 이어진다. 어차피 여권은 당분간 야당을 끌어안고 정국을 오순도순 풀어가기는 어렵게 돼있다. 여권이 개혁드라이브를 몰아치고 야당이 숨죽이고 있던 지난해 새정부출범 몇개월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정국이 굴러갈 수밖에 없다. 내년 지자제 선거때까지 이같은 긴장국면이 계속될것이라는 관측이 그래서 유력하다. 정부와 여당은 우선 UR 비준에 있어서도 야당을 설득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김대통령이 농림수산장관을 경질하고 총리의 사과담화를 발표하게하는등의 정면돌파 방식으로 나오고 앞으로도 그 기조가 계속될것으로 보이는것은 물론 야당의 공세 여지를 좁히고 성의를 보인다는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상당기간 국민을 상대로 명분있는 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것이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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