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단순 메시지로 청중유혹/축구팀 응원하듯 정치 참여케/「마케팅기법-페로」 「메시지-클린턴」 「매너-레이건」 닮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57). 그는 밀라노의 평범한 은행원 아들로 태어나 진공청소기를 팔면서 대학을 마친후 유람선에서 노래를 불렀다. 쇼사회자에 불과했던 그는 남의 돈을 빌려 건설업에 뛰어들면서 운명을 개척했다. 그리고 20년만에 유럽최대의 미디어왕국을 거느린 이탈리아 3대재벌의 총수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유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기적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정치입문 2개월 반. 쿠데타를 제외하고는 현대 정치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시일내에 그는 서방선진 7개국(G7) 중 한나라의 통치자로 변신을 눈앞에 두고있다.
지난달말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에서 국민 4명 중 1명은 그의 신생정당에 표를 던졌다. 자신의 거점인 밀라노를 버리고 전통적으로 좌파가 지배해 온 로마의 정치 1번지에서 도박을 건 그는 47%의 득표로 당선됐다. 그가 주축이 된 우파연합(자유동맹)은 전체 하원의석의 60%를 차지했다. 우파연합이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할것이라던 정치분석가들의 관측은 크게 빗나갔다.
선거혁명으로 불린 지난 총선에서 기적을 일궈낸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유럽언론들은 이제 냉정하게 이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그 해답은 이렇다. 대중심리의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한 탁월한 메시지 전달능력과 방식, 세련되게 연출된 이미지와 매너, 참여를 통한 능동적인 조직운영이다.
신랄한 정치분석가들에 의하면 베를루스코니는 「위대한 유혹자」이다. 그는 자신을「이탈리아의 꿈」으로 포장하는데 성공했다.
오페라를 창안한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무대와 음악과 연기일 것이다. 대본의 진부함은 프리마돈나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무대장식으로 숨길 수 있다. 베를루스코니의 선거운동은 정치라는 무대에서 프리마돈나의 명연기와 이를 뒷받침 해주는 오케스트라로 「유혹의 장」을 연출한 오페라였다.
그의 비범한 연기술은 청중들의 눈과 귀를 휘어잡으면서 그의 정치적 역량과 기업가로서의 과거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켰다.
그의 대사는 간단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정치를 하자』는것이었다. 지난해 개정된 선거법은 처음으로 유권자들이 정당보다는 단 한명의 후보에 표를 찍는 소선거구제를 채택, 유권자의 선택을 보다 명료하게 도와주는것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주효했다. 새선거제도 속에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창당한 「포르자 이탈리아」(전진 이탈리아)당의 이름은 축구경기에서 응원하는 구호에서 나온것이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46년간을 통치해 온 기민당과 연정세력등 기성정치에 소외감을 느껴왔다. 그는 이를 간파했다. 그가 선거의 전위조직으로 창설한 전국 1만3천여개의 「포르자 클럽」은 마치 축구팬들이 팬클럽을 통해 그들이 좋아하는 구단을 응원하듯 국민들에게 정치참여와 논쟁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의 정치입문 동기는 2년간에 걸친 「마니폴리테」(부패추방운동)로 기성정당과 정치인들이 몰락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거운동기간 부패에 대해 말을 아꼈다. 반면 그의 최대 정적인 좌파연합은 부패추방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탈리아국민들은 날이 새면 터져나오는 정치인과 기업인의 부패뉴스에 지칠만큼 식상했다. 부패에 대한 분노는 실업과 경제침체에 대한 현실적 우려로 바뀌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를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기적을 우리 스스로 창출하자』고 일관되게 외쳤다. 그의 연설은 단순하면서도 대중적 설득력을 갖췄다. 그는 정치판의 용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에는 4백만명의 고용주가 있다. 한명이 일자리를 하나씩 더 만들면 우리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지않고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쉽게 그러나 단호하게 연설했다.
그의 친밀한 대중적 이미지빌딩은 그의 성공에 훌륭한 조연이었다. 비록 「가루비누장수」라는 모욕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자수성가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꿈꾸는 모델이다. 더블슈트에 단색의 셔츠, 중간색의 넥타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결코 건방지게 보이지 않으면서 성공한 사람의 세련됨을 연출했다. 크지 않은 키에 대머리인 그는 항시 전문화장사를 대동하여 자신을 젊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70여개의 방이 있는 밀라노 대저택의 수영장에서 아침마다 수영을 하는 모습, 그가 운영하는 최고명문축구단 「AC밀란」의 경기장에 자가용헬기를 타고 나타나는 모습은 성공한 사람만이 갖는 당당하면서도 확신에 찬 이미지 연출이다. 한 평론가는 현대식 마케팅 기법을 응용한 그의 선거운동방식은 로스 페로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클린턴에, 매너는 레이건스타일에 비유했다.
우파연합의 갈등으로 그가 자신을 총리로한 내각구성을 원만히 이룰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제 그의 정치적 성공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는 과연 끝까지 기적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인가. 정치분석가들은 그의 성공이 그의 장래까지 보장할 것이라는데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자신이 외친 선거공약의 인질이 되고있다.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고 기업민영화와 세금감면, 1백만명의 실업구제가 가능할 것인가. 선거는 마케팅일수 있으나 정치는 장사가 아니다. 청중들은 오페라의 막이 내린후에도 프리마돈나를 영원히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파리=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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