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리는 1일 시·도지사회의에 특별히 참석하여 이렇게 강조했다. 『야당에 있던 사람들은 선거때마다 관권개입 시비가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는지를 잘 알것이다. 선관위장을 맡았던 89년 나의 최대 고민도 그 문제였다. 이자리에는 야당출신 기관장들도 있는데, 그들은 직무수행을 더 엄격히하여 의혹의 소지가 없게해야 한다. 의혹을 남기면 그 선거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
총리의 말은 백번 옳다. 그는 최근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던 최기선인천시장과 박태권충남지사를 염두에두고 그런 훈시를 한것인데, 과거 야당이나 재야에서 일하다가 현재 정부·여당에 몸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총리가 민의를 대변하여 이정도의 훈시를 해줄 날을 오랜 세월 기다려 왔다. 그리고 총리가 대통령의 무거운 짐을 나눠 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새삼 확인하고 있다.
김영삼정부는 정권교체를 이룬 정부가 아니면서도 사실상 정권교체를 이룬 정부 못지않은 신선한 기대속에 출범했다. 4·19로 탄생한 장면정권 1년을 제외하고 야당출신들이 집권세력의 골격을 이룬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당은 오랜 군사정부아래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국민과 공유해왔고, 어느 시대의 야당보다도 독재의 해악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개혁과 사정을 추진했을때 우리는 그가 야당지도자로서 걸어왔던 험난한 투쟁의 길을 떠올렸고, 그가 나라 곳곳에 남아있는 독재의 잔재를 깨끗이 몰아내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국민이 새정부에 보낸 신뢰속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구성원이 과거에 피압박자였다는 사실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대통령의 측근세력으로 고난을 함께해온 최시장과 박지사의 사전선거운동 혐의는 그런점에서 특별히 유감스럽다. 총리의 말대로 그들은 선거에서의 관권개입이 얼마나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고, 야당후보를 옴쭉달싹 못하게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을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국민의 세금을 함부로 사용하여 지역주민들에게 선심을 썼다는 사실에도 실망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실망은 그들이 너무 빨리 과거를 잊고 권력자의 타성에 빠졌다는것이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 아래서 숱한 희생을 치렀다. 그 어둡던 시절 재야운동권, 야당, 대학생들의 민주투쟁은 국민의 실낱같은 희망을 지켜주는 등불이었다. 그 값진 과거를 헛되게 흘려버리고 빗나간 권력의 논리로 무장하는것은 자기자신을 배반하고 국민과 역사를 배반하는것이다. 야당하던 사람들은 달라야 한다. 다르지 않다면, 그들의 투쟁은 단지 「권력을 잡기위한 투쟁」이었다고 기록될것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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