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문화적 쇄국주의(1000자 춘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화적 쇄국주의(1000자 춘추)

입력
1994.04.02 00:00
0 0

 동구권을 여행하며 제일 곤란을 겪는 점은 언어소통이 잘 안되고 도대체 길거리의 간판을 알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금년이 「한국방문의 해」이면서 서울의 간판들이 온통 한글 투성이라면 외국손님들의 기분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쇄국주의 정책으로 개방화가 일본보다 한 발짝 늦었고 그것이 결국 나라를 잃는 꼴이 되었었다.

 아직도 문화적 쇄국주의의 꿈 속에 잠겨있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얼마 전 일본주재 공노명대사가 『일본대중문화 개방』운운했더니 평지풍파를 일으킨듯한 반응으로 보아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문화를 지킨다는 명목에서 배타적으로만 나간다면 이 나라의 문화는 제자리걸음에 머물 것이 너무도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 나라의 문화가 울타리를 치고 웅크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일찍이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를 받아들여 그 대미를 장식하였으며 아직도 세계화단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그들은 「에콜 드 파리」(파리파)를 세계의 화가들이 파리에 와서 만들었고 또한 그 파가 전세계에 영향을 주었다고 자랑한다.

 일본은 일찍이 고구려문화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일본문화의 하나의 바탕이 되고 있다. 또 그들은 우리 보다 먼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를 발판 삼아 지금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약진한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지금껏 쇄국주의를 고집했다면 아직도 사무라이의 나라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서려면 필연코 발판이 필요하다. 외국 문화의 수입은 그만큼 우리 문화의 폭이 넓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 전통문화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서울의 거리는 국제적인 대로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 한쪽에서 재즈가 튀어나오고 샹송이 흘러나온다 해도 하나도 어색할 것이 없다.

 같은 의미에서 일본의 엔카가 들려온다 해도 그것은 그냥 흘러갈 뿐이다.

 어느 의미에서 문화수입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손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 그것은 새 문화 창조의 발판이 된다고 생각한다.<김흥수·서양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