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정보의 풀」… 산업경쟁력 받쳐/아이디어 수용 「벤처 비즈니스」도 활기 정부와 기업, 그리고 대학에서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과학기술인력이다. 미국의 과학기술인력은 정부 기업 대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인체의 혈액과 같이 산업계에 자양분을 공급, 미 경제를 침체로부터 건져올리는 활로를 뚫어가고 있다. 또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인적자원의 연결고리는 각 부문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서 미국의 국익을 위한 거대한 정보의 「풀」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기업들은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활동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회사인 IBM사, 각종 전자장비의 생산업체로 이름난 쉬룸버거사, 굴지의 제약회사인 멀크사등 대부분의 유명기업들은 대학담당 부사장을 두고 연구성과의 수집, 연구인력충원등 대학관련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자체 연구개발기금을 원활히 조성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대학과의 연계를 가지려 애쓴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은 1년에 기업당 3만∼4만달러(2천4백만∼3천2백만원 상당)의 비용만으로 대학과의 공동연구가 가능하고 대학의 앞선 기술을 품질개선 및 신상품개발에 이용할 수 있다.
거꾸로 대학의 교수들은 상아탑을 과감히 박차고 나와 기업의 자문역할을 하는데 열성적이다.
학문세계에서 얻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살벌한 기업세계에 직접 뛰어드는 교수도 부지기수다. 과학기술을 매개로 기업은 대학에, 대학은 기업에 서로 접근하고 있는것이다.
MIT, 하버드등 대학이 많기로 유명한 미동부 보스턴지역 외곽의 128번 도로주변에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는 전자 및 생명공학관련 기업들은 그 인적자원을 자신들과 이웃하고 있는 대학가에서 흡수한다.
현재 3백여개의 크고 작은 「벤처 비즈니스」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기업과 대학간의 인적·물적교류가 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다. MIT에서 개발된 기술을 이용해 설립된 벤처기업만 해도 현재 7백여개가 미 전역에서 재벌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마치 「산학복합체」성격을 가진 이런 기업들 중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설립한 기업도 적지 않다.
대학의 구성원들이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학문적 성과를 곧바로 상업화하려는 「벤처 비즈니스」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것이다. 이를 통해 이론적 기초가 시장의 상품으로 연결되는 「리드 타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있다.
생명공학기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업을 설립한 MIT 생물학과의 앤터니 신스키교수는 『학문이든 기업이든 모두 새로운 도전에서 출발한다』며 『교수가 상아탑에 안주해 한 우물만을 파는것이 결코 미덕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연구를 위해 정부 기업 대학을 넘나드는것을 리벌빙 도어(회전문)에 비유한다. 회전문을 드나드는것처럼 출입이 자유롭다는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의 교수가 외부활동을 하는것을 외도로 치부하는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보스턴=고태성기자】
◎미 국립보건연 과장 윌리엄 에켈만 박사(인터뷰)/“인적자원 순환 막지않는 사회돼야”
미 보사부산하 국립보건연구원(NIH)의 동위원소 진단의학과 과장 윌리엄 에켈만박사(63)는 정부 산하기관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현재는 신분이 공무원이다. 그러나 에켈만박사는 한동안은 대학의 교수이기도 했고 또 한동안은 대기업의 연구소에 있으면서 연구담당 부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에켈만박사는 이러한 자신의 경력에 대해 『미국에서는 과학자의 소속직장에 따라 사회적 평가를 달리하는 선입견이 거의 없다』면서 『따라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분야에 가장 적합한 여건을 찾아 직장을옮겨 다니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즉 인적자원의 순환을 가로막는 사회적 편견이 없어야 자원의 손실을 막고 과학기술연구분야에서 최대의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에켈만박사가 지난 68년 워싱턴대학에서 핵화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뒤 처음 연구를 시작한 곳은 「맬린 크로트」라는 제약회사의 연구소였다.
이 연구소를 시작으로 89년 NIH와 인연을 맺기까지 에켈만박사는 「부룩 헤이븐」국립의학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조지 워싱턴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했다.
교수직을 떠나 89년 NIH에 온 그는 이곳에서 3년간 연구활동을 한 뒤 91년에는 미국 굴지의 제약회사인 스큅사의 부설연구소로 자리를 옮겼고 이 회사에서 연구담당 부사장까지 지냈다.
지난해 다시 NIH에 돌아온 에켈만박사는 『직장을 옮기는것이 나에게는 가장 적당한 연구장소를 찾는다는 것을의미한다』면서 『물론 보수가 가장 좋았던 곳은 역시 기업』이라고 귀띔했다.
에켈만박사는 지난해 NIH에 돌아온 뒤 연구원측이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분리 독립시킨 동위원소 진단의학과에서 30여명의 후배박사들과 함께 6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면서 동위원소를 이용해 암의 위치와 크기를 조기에 찾아내는 진단법 개발에 연구정력을 쏟고있다.【베데스타=진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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