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폭주막아 쟁점사건 신속처리/“재판받을 권리 제한” 반대여론도 대법원이 30일 민사·가사·행정소송에 상고심사제를 도입하기로 확정한 것은 폭주하고 있는 무분별한 상고를 방지, 대법원의 법률심으로서의 고유기능을 회복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현재 연간 상고사건은 1만3천여건에 달해 대법관들은 하루에 본안사건만 4∼5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왔다. 특히 상고사건의 상당수가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이어서 대법관들은 이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법령해석을 쟁점으로 하는 사건을 충분히 심리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법원이 마련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안은 이같은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앞으로 형사사건을 제외한 모든 상고소송에 대한 심리는 개시하되 「법정상고이유」에 해당되지 않을 때는 심리를 중단하고 판결없이 상고를 기각하겠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은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직결되는만큼 상고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
대법원이 정한 「법정상고이유」는 ▲원심판결이 헌법을 위반하거나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명령·규칙·처분의 법률위반을 부당하게 판단하거나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대법원 판례가 없거나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민사소송법 3백94조에 규정된 「절대적 상고이유」에 해당되는 경우 등이다.절대적 상고이유는 ▲판결에 이유를 명시하지 않거나 모순이 있는 때 ▲변론공개의 규정에 위배한 때 등이다.
대법원은 이 기준에 따라 상고심사를 할 경우 전체 상고사건의 60∼70%가 걸러지고 30∼40%만이 법률심으로 상고심재판을 받게 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상고심사제 도입으로 대법관들의 사건부담이 대폭 줄어들지만 매년 원심파기율이 7∼8%인 점을 감안하면 심사를 통과한 사건만을 심리한다해도 상고심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고심사제는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재야 법조계와 학계가 강하게 반대를 표명해 왔다. 1·2심의 사실심 기능이 약한 현실에서 상고마저 제한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이익을 줄 소지가 많다는 주장이다.이에 따라 재야법조계등에서는 대법관수를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고사건 수에 따라 대법관 수를 늘릴 경우 70∼1백명선이 돼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법령해석을 통일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모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심판하도록 하자는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특례법안을 공개한 30일 이세중대한변협회장은 『대법원이 재판서비스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도외시한 채 상고심사제도입이라는 편의주의적 방법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국회에 변협의 입장을 전달하고 상고심사제를 반대하는 범국민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혀 국회심의과정에서도 논란이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법원이 특허사건의 항고심판제를 없애고 특허청의 심판에 불복할 경우 특허소송을 내도록 하고 이를 서울고법에서 관할토록 한 것은 지금까지 특허소송의 사실심인 심판과 항고심판을 모두 행정기구인 특허청과 특허청 항고심판소에서 담당, 위헌소지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같은 특허심판절차를 규정한 특허법의 위헌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한 상태여서 특허소송제도의 손질이 불가피했었다.
대법원은 또 기술판사제를 도입하고 특허법원을 만들자는 특허청과 변리사회의 의견을 일부 수용, 특허심리관제도를 도입해 이들이 재판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해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은 새로운 규칙을 마련,특허심리관을 법원 공무원으로 임용키로 방침을 정했다. 심리관인력은 특허법개정에 따라 폐지되는 항고심판소의 인력을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인것으로 알려졌다.【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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