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핵폭탄 비밀제조목적 건설/외부와 철저차단… 생활은 윤택/아직도 삼엄한 무장경비… 말보로담배·성당 등장 변화물결도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 있던 러시아의 비밀핵도시 「아르자마스16」의 정체가 최근 이곳을 방문한 LA 타임스 취재팀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 러시아의 비밀핵도시 「아르자마스16」탐방은 출발부터 은밀하게 이뤄졌다.
모스크바의 부코보공항내 구석진 곳에 있는 약국 주위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담당관리의 신분확인에 응하는것으로 탑승수속은 끝났다. 탑승티켓은 물론 여권을 제시할 필요도 없이 인솔자를 따라 활주로로 걸어나갔다.
취재진이 탄 소형 항공기는 아에로플로트항공의 비행일정에도 잡혀있지 않았다. 항공기와 비행일정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부코보공항을 이륙한지 45분쯤에 도착한 이 조그만 도시는 러시아지도에는 나와있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도시인 셈이다.
그러나 아르자마스16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4백여 떨어진 이곳은 「KB 2」에서부터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새 예루살렘은 이곳에서 일했던 구소련의 핵물리학자 가운데 유대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온 별칭이다.
○… 아르자마스16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의료시설이 잘 갖춰진 산부인과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는 막 태어난 한 어린이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놈이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핵폭탄을 만들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농담이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이 「아르자마스17」이라고 부르는 공원묘지에도 십자가와 함께 원자탄의 상징물들이 눈에 뛰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아르자마스16은 지난 46년 한 러시아 성인의 고향인 사로프에 세워졌다. 성지로 알려진 사로프에 낯선 얼굴들이 몰려들면서 종교적인 색채는 탈색됐다. 새 이주자들은 전혀 다른 신앙과 이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핵무기제조의 비밀을 알아내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49년 여름까지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실험에 들어갈 수 있는 핵폭탄을 제조해야 했다.
○…최근에 발견된 비밀문서에 의하면 악명높은 KGB의 총수 베리아는 핵실험이 실패할 경우 처벌할 주요 인사들의 명단까지 작성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성공했고 모두 최고훈장을 받았다.
베리아는 이곳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그 결과 70년대에 걸쳐 아르자마스16 주민10여만명의 여권등에 기록된 공식주소는 하나같이 「모스크바, 옥차브리스코보 폴랴 36동」으로 돼 있었다. 모스크바에 돌아온후 「옥차브리스코보 폴랴 36동」을 찾았다. 모스크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파트였다. 아파트주민들은 아르자마스주민들의 공식주소가 자신들과 동일하다는 사실에 놀라는 눈치였다.
○…아르자마스16의 호수가에 있는 공원에는 멋진 빌라가 하나 있다.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사하로프박사를 위해 지은 집이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여기에서 살기를 거부했다.
이곳 주민들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었지만 최근까지 생활에 불편한게 별로 없었다. 예를 들면 시내에 세탁소가 없지만 세탁물은 모스크바로 보내져 깨끗이 세탁돼 오는것이다. 인근에 고르키가 있지만 모스크바의 세탁소가 더 좋다는 이유로 모스크바에서 세탁해 온다.
핵실험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58년께 이곳 과학자들은 수킬로그램의 수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수은은 즉각 전달됐고 이후 4년여동안 소련 전역의 약국에서는 수은체온계를 살 수가 없었다.
○…이곳의 생활수준은 적어도 다른 지역에 비해 2배정도 높았던것같다. 거의 모든 가정이 자가용을 소유했다. KGB가 치안을 담당하기 때문에 범죄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도 젊은 여성이 혼자 텅빈 밤거리를 걸어다니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내 곳곳을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이 훈련견과 함께 철저하게 경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러시아를 뒤집어놓은 혼란사태도 아르자마스16에는 적어도 심각한 수준의 변화를 몰고오지는 않았다. 모스크바의 거리처럼 벽에 낙서도 없고 정치적 파벌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도 변화물결이 서서히 일고 있다. 도로 곳곳의 노점상이나 상점에는 말보로등 외제담배가 선보였다. 성당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성당의 문은 원자탄껍질을 만드는 강판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지난해 이곳 과학자들의 임금이 3개월간 체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체육관에 모여 파업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정부의 즉각적인 체임지불약속으로 소요는 가라앉았지만 이런 사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핵물리학자인 레오니드 오그네프는 『우리는 조국에서 이제는 불필요한 존재로 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는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아르자마스16의 경리책임자인 블라디미르 벨루딘은 기차 여승무원이 이곳의 유능한 원자탄설계사보다 임금이 50%정도 높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핵물리학자가 열차승무원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때가 반드시 찾아올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정리=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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