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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당선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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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당선자 인터뷰

입력
1994.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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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 내일, 우수작은 2주걸쳐 한편씩 게재 한국일보사주최 제12회 여성생활수기 공모에 당선한 3명의 주부들은 각각 학생운동권출신, 시인 지망생과 미국인 남편의 아내로서 평범치 않은 자신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다음은 응모 수기를 심사했던 두 작가의 심사평과 수상자3명의 인터뷰내용이다. 당선수기중 최우수작은 30일자에, 우수작은 주1회 한편씩 두주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최우수상 김경순씨/가난한 이들 건강한 삶 도와주고파

 『많은 여성들이 저보다 힘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제가 최우수상을 받게 돼 부끄럽습니다』 최우수작「아직 오지 않은 내일 」을 쓴 김경순씨(27·경기 파주군 금촌읍 금촌리 321의 15)는 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권학생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신세대주부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한번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싶어 수기공모에 응했다』는 김씨는 고등학교때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다.대학에 진학하고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달라졌다. 80년대 후반 대학에 다녔던 다른 많은 학생들처럼 김씨도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에 있는 부모와의 갈등이 심화됐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것을 알고 조그마한 힘이나마 이들을 위해 살아갔으면 하는 소박한 꿈이 생겼지요. 그러나 부모님은 남들처럼 대학 나와서 결혼하는 평범한 여성의 길을 걷기 바라셨습니다』

 대학 3학년때 학생운동 서클에서 만난 선배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결혼은 특히 여성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지요. 그러기 때문에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치관과 성격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보았고 지금도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친구에게 빌린 20만원으로 궁핍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끼니를 굶는 때도 있었고 방값을 구하지 못해 여러 차례 이사도 다녔다.

 『흔히들 결혼은 사랑만으로  살 수 없고 가난을 면치 못하면 행복은 없다고들 하는데 저희 부부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결혼5년뒤 양가 부모님이 참석하는 「정식 결혼식」도 올렸지요』 

 현재 부부가 건강식품 대리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넉넉하다고 김씨는 말하면서 앞으로 단전호흡이나 수지침등을 배워 가난한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배국남기자】

◎우수상 정성희씨/“자의식-인습사이 갈등나누려…”

 『현대 교육을 받고 자의식이 강한 젊은 주부가,「도리」라는 이름으로 채무처럼 따라붙는 남편 시댁 친정에 대한 수많은 인습적 의무들 속에서 겪는 고 통을, 모든 젊은 여성들과 공감하고 싶어 이 수기를 썼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을 본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이름 붙인 수기로 우수상을 차지한 정성희씨(28·서울 중구 신당3동 366의 70)는 『자의식과 인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이 쿤데라 소설 주인공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은 점이 많아 같은 제목을 달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학교 때부터 계속해서 일기를 써왔던 정씨는 지난해의 일기장을 넘겨가면서 가장 의미있는 내용이 들어있는 날짜분을 발췌해 원래 형식 그대로 응모했다.

 『일기를 발췌했던 만큼 평소 생각을 1백% 솔직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고 이 점이 식구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는 정씨는 『하지만 모든 얘기들을 그냥 마음속에만 묻어 둔다면 폭발해버릴 것같아 수기공모라는 기회를 빌려 밖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소설가를 꿈꾸는 정씨는 내후년쯤 시골집으로 이사, 중앙대 문예창작과 동문이면서 시인 지망생인 남편 정희일씨(33·회사원)와 함께 글쓰기에 전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은호기자】

◎우수상 김옥교씨/미국인과 재혼… “인생유전 그렸죠”

 「못다한 망향의 노래」로 우수작에 당선된 김옥교씨(56·817 EAST BROOK CT DANVILLE·CA·94506 USA)는 초혼에 실패한 뒤 미국인과 재혼한 재미동포다.

 4남매의 어머니 김씨는『자신의 인생유전 과정을 틈틈이 기록해 두었다가 이번에 정리한 것을 응모해 영광을 안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가 나이가 들었지만 노력한다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미국내 대학에서 매주 2시간씩 문예창작과목을 이수하며 습작을 해오다 응모했다』는 김씨는『제 수기가 미국 중류 가정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관계 일을 하던 남편과 이혼한 뒤 두 아들을 떠맡은 채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통역원으로 일하다 당시 미군 사병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 재혼했다. 남편은 현재 미국내 석유회사 간부로 있으며 아이들은 결혼했거나 대학에 재학중이다.

 『꿈을 갖고 노력하면 불행을 극복할 수 있고, 또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김씨는 59년 이화여대 국문과 3학년 때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고 지난해에는 자신의 미국생활을 담담하게 그린 자전적 수필집「다시 만난 연인들」을 출간했었다.【LA=박진렬특파원】

◎심사평/감동보다 여성의 인식확대에 비중/젊은층 응모 급증… 삶의 깊이 줄어 아쉬움

 예년과는 달리 올해의 생활수기 응모자들 중에는 이십대와 삼십대의 젊은 주부들이 많았다. 응모자들의 연령층에 의미를 두는 까닭은 거세고 험난한 강물처럼 장대한 삶의 파란만장함이 주는 감동은 당연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보고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속에 파편처럼 박혀있는 눈물과 한숨의 양은 그다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삶은,우리의 생각처럼 빠르게 개선되거나 진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기들은 한결같이 호소하고 있었다.

 따라서 올해의 최우수작은 단순소박한 삶이 주는 절실한 감동쪽에서 찾아지지 않았다. 시대가 달라졌고 여성들의 세계인식도 이만큼 달라졌다는 현상을 짚어보자는 뜻에서 망설임 끝에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팔십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조국과 민족의 현실에 가슴아파 했던 한 여대생이 결혼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창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수기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모순 투성이의 인간존재들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약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응모된 다른 수기들한테서 실컷 맛보았던 속수무책의 절망감을 떠올린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서 보여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은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덕목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최우수작에 빠뜨렸던 우리 모순 투성이 인간들이 겪고 있는 애증에 대한 통찰은 우연찮게도 우수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더할 수 없이 수려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주는 불합리성 그러나 그속으로 자진출두해 들어가기만을 요구하는 세상의 제도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는 내면의 비명들이 손에 잡힐 듯이 묘사된 이 수기는 우선 문학성있는 문체만으로도 충분히 읽힐만한 작품이다.

 또하나의 우수작 「못다한 망향의 노래」는 고국에서 상처입고 새로운 삶을 가꾸기까지의 인생항로를 담담하게 아로새긴 작품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인 남편과 그 가족들이 전남편 소생이었던 두 아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성실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지극히 감동적이다. 핏줄에만 연연해서 결국 많은 것을 그르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대해 한번쯤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수기였다.

 이밖에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농촌 생활의 고단함과 서정을 잘 묘사해 준 오기옥씨의 「고향지기 아낙의 꿈」과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애정과 헌신을 담은 체험기를 보내준 김경자씨의 「사랑하는 당신에게」도 무척이나 아까운 응모작이었다.<김향숙·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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