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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숨겨진 조선불화 수백점추정/거의「당」자 붙여 400년간 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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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숨겨진 조선불화 수백점추정/거의「당」자 붙여 400년간 위장

입력
199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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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때 마구 약탈… 제명 바꿔/도쿠가와가서 나고야일대 사찰에 기증 일본 나고야(명고옥)일대 사찰에 숨겨진 조선불화(한국일보 3월14·19일자 보도)는 문화재약탈사를 증언하고 있다. 불화의 명문이 지워지거나 표구과정에서 잘려져 지금까지 확인된 17점도 정확한 반입경로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임진왜란때 약탈당한 조선불화는 적어도 수백점일 것으로 추정된다.

 개국초부터 억불숭유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달리 궁중에서 불화를 제작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제13대 명종조(1546 ∼1567년)에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와 보우선사에 의해 불교는 잠시 부흥기를 맞았으나 임란이후 다시 탄압을 받았으며 왕실의 지원으로 불화가 제작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명종조에 제작된 불화는 5백여점이나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명종조무렵 일본은 2백여년에 걸친 토호들간의 전쟁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에 의해 마무리돼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력의 강성함에 반해 문화적 재산이 빈약해 중국와 조선의 선진문화에 대한 갈증이 심해 조선의 문화재를 최고 전리품으로 챙기곤 했었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왜군들은 조선을 휩쓸고 다니며 문화재를 마구 약탈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군대에는 「외교승」이라는 이름의 승병이 속해 있어 불화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나고야 시내 흥정사에 보관된 조선불화의 최고걸작 「당회석가존」은 창덕궁의 한 후궁 방에 걸려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내 조선불화를 발굴해온 민간단체 나고야 조선사연구회(회장 관정정지)는 복장·머리모양으로 미루어 이 불화의 아래쪽에 앉아 있는 뒷모습의 공양자가 문정왕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문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도쿠가와미술관측의 고증에 의하면 조선불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뒤 히데요시 아들과의 전쟁에서 이긴 도쿠가와가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도쿠가와가는 나고야 일대에 가문의 번영을 비는 사찰을 많이 짓고 조선불화를 기증했다. 각 사찰은 4백년동안 이들 불화가 약탈품인 것을 모르거나 숨긴채 대부분 불화의 제명에 「당」자를 붙여 당·송의 불화인 것처럼 위장해왔다. 최근 나고야조선사연구회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조선불화가 공개되고 있으나 일부 사찰은 실체규명에 소극적이거나 외부공개를 꺼리는 상황이다.

 나고야 일대는 연중 습도가 높아 일반 사찰에서 4백년 이상된 불화를 제대로 보관하기에 문제가 많다. 나고야조선사연구회측은 『97년까지 연구회를 일본 전국조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숨겨진 조선불화를 함께 발굴,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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