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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와 서양과 북핵/유동희 북경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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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와 서양과 북핵/유동희 북경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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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한 한승주외무장관이 중남해로 강택민국가주석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양국관계 발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강주석은 문득 벽에 걸린 소동파의 시를 풀어 설명한뒤 서양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한시의 참맛을 알지 못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강주석의 이같은 인식이 중국지도부의 일반적 인식이라면 전기침외교부장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문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한시의 한 구절을 인용한것은 다름아닌 우리를 의식한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핵 사찰이 불완전하게 끝난 직후에 있은 기자회견에서 전외교부장은 「산궁수진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산이 다하고 물이 끊겨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버드나무 그늘아래 꽃이 활짝 핀 마을이 나타나네)이라는 시구절을 인용했다. 비관적 상황속에서 낙관을 주문하며 협상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것이다.

 이후 이붕총리의 북핵문제에 관한 언급도 이 시구를 통해 나타내고자하는 뜻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 역시 시를 중국과의 외교에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왔다.

 고구려 을지문덕장군은 침입한 수나라 장수에게 오언고시로 철군을 종용했고 특히 조선조 때는 명나라 사신이 오면 으레 시회가 있었다.

 은유적인 시의 교환이 서로의 속마음을 교환하는 효과적인 수단일 수도 있음은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는 26일부터 시작되는 김영삼대통령의 중국방문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중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지도부가 북한 핵문제에 관해 밝힌 입장이 어떤것이 될것인가는 전기침이 인용한 시구가 이미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몰고올 정도로까지 악화된 북한 핵문제에 중국의 입장만을 귀담아 듣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은 긴박하다. 중국의 낙관론과 대화주문에 대한 우리의 「은유적 응수」는 무엇이 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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