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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말/이종구 국제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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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말/이종구 국제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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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대통령은 정치지도자중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다. 대통령이 되기전 그를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YS는 탁월한 직관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말솝씨는 없다고 말해왔다. 그가 「감의 정치」를 구사하는것도 그런 연유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다.○실수할까 조마조마

 문민정부 출범초기 한때 유행했던 『우째 이런일이…』라는 말은 그의 말솝씨덕에 생겨난것일게다. 실제로 두번의 대통령후보시절 유세장에서 있었던 몇번의 말 실수는 유세장 청중들을 재미있게 한적이 있다. 김대통령은 솔직담백한 이미지를 갖고있다. 사실은 이런 솔직담백성이 정치인 시절 그의 말의 실수를 커버해왔다고 할수있다. 하지만 솔직담백이 좋은 덕목의 하나이기는 해도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계기에 그것이 마냥 장점만이 될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국가이익을 가늠해야 하는 정상외교의 장에서 말은 상당히 중요한 수단일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외국정상과 만날 때 혹시 실수는 하지않을까 궁금해하는 국민들이 있었을것은 당연하다.

○방일답사보며 안심

 그런데 엊그제 저녁, TV 방송 생중계를 통해 김대통령과 일왕의 만찬행사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후보시절 유세장 청중들을 재미있게 했던 YS는 이제 더이상 아니구나 하는것을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만찬답사를 하는 어조가 괜찮아 보기가 좋았다.

 국제무대에서 김대통령의 말실력은 지난해 말 태평양국가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모인 시애틀 APEC정상회담 때 처음으로 검증된바가 있다. 그때 김대통령을 수행했던 한측근은 김대통령이 『그런대로 잘 해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보기는 영어가 안통해 다소 어색한 장면이 있었기는 했지만.

 그 측근이 나중에 밝힌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대로 수긍할만은 하다. APEC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클린턴미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보좌진은 물론 준비된 노트없이 블레이크 섬으로 이동해 즉흥토론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마침 그 토론에서 김대통령이 사회역을 맡게 되어있어 측근들은 은근히 걱정을 했다. 그런데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강택민중국총서기와 호소카와일총리는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노트를 커닝해가면서 토론에 임했고, 김대통령은 아무 준비가 없었으나 순발력을 발휘해 토론을 성공리에 이끌었다. 토론을 마친후 김대통령은 기억을 되살려 할 얘기를 다했다고 토로하면서 『그 사람들 약속 어겼잖아…』라며 매우 즐거워 하더라는것.

○세련돼가는 말솝씨

 김대통령은 세계각국의 지도자중 어떤 범주의 스타일을 가진 지도자일까. 외신을 자주 접하다 보면 각국 지도자들의 실력정도와 그로인해 연상된 독특한 이미지를 갖게된다. 예를들어 클린턴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답게 자신에 차있지만 어딘가 경륜이 부족한것 같고, 호소카와총리는 참신하고 정직하나 리더십이 약해 보인다. 강택민국가주석은 노련해 보이지만 아직도 1인자답지 못하고, 미테랑은 포용력은 있어보이나 힘이 없는듯하다. 콜총리는 능글맞지만 믿음직해 신뢰가 가고, 옐친은 강력한 지도력은 있어보이나 어딘가 치밀하지 않은듯 하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김대통령에 대한 이미지에는 클린턴, 옐친대통령 콜총리의 장·단점이 혼재되어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실력과 경륜의 배양으로 상승세를 타는 지도자가 있고 그 반대로 하강세를 그리는 지도자가 있다. 격변의 시기일수록 지도자의 이런 부침은 더욱 심하게 마련이다. 과거 우리의 대통령중 상승세와 연계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대통령이 상승세를 타는 최초의 국가지도자가 되기를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점차 세련되어가는 김대통령의 말과 태도에서 그런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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