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 사과를 팔러온 과일장수가 식당 종업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북한이 정말 전쟁을 일으키면 어쩌지?』
식당 지배인의 대답은 『아저씨 쓸데없는 소리 말고 사과나 많이 파세요』였다. 식당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웃었고,그 과일장수도 웃었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제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북한의 남침야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맹목적인 공포를 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북한경제가 파산상태에 이르고, 정부의 반공정책이 북의 실상을 알리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우리는 좀더 자신감을 갖고 객관적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북에 대한 경계심이 해이해졌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으나, 북을 더 많이 알게된것 자체가 우리의 힘이다.
남북 공식접촉에서 북측대표가 노골적인 전쟁위협을 하는것을 보면서 남한사람들이 느낀것은 분노와 한탄이었지, 전쟁공포는 아니었다. 아무리 북이 궁지에 몰려 이성을 잃는다해도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라면을 사재기하는 사람도 없고, 민심이 흉흉해지지도 않았다.
23일 이병태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도발양상에 따라 이를 통일전쟁 수행의 기회로 연계시킨다는 전략개념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는 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다짐 이상의 의미는 없다. 북이 전쟁을 일으키면 군은 당연히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겨야 하고, 승리는 통일을 가져올것이다. 그러나 북이 최근 주민들을 닦달하며 전쟁분위기 조성에 광분한다고 해서 우리가 즉각 「통일전쟁」 운운하는것은 적절치 못하다.
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원칙이 없다는 비난이 나오게된 배경에는 주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점도 큰 작용을 했다. 당연한 원론을 무슨 특별한 입장인것처럼 강조하고, 사태가 바뀌면 그 말을 주워담느라고 정반대의 제스처를 취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래서 국민은 도대체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던것이다.
고위직 관리들이 신중하지 못하게 튀는 행동을 계속하면 그 정부가 미숙하고 불안하게 보이는것이 당연하다. 하물며 안보관련 분야에서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북진통일이 아닐뿐 아니라 국민의 절대다수는 결코 전쟁에 의한 통일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장관이 「통일전쟁」을 입에 올린것은 북측을 겁주기보다 전쟁분위기 조성에 이용될 뿐이며, 우리 국민들에게는 안보팀이 너무 급하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휘두른다는 인상을 깊게할 가능성이 높다. 말을 절제하며 빈틈없이 대비하는 자세가 아쉽다. 【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