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가 조용히 한국을 다녀갔다. 현대그룹의 초청으로 5일부터 7일까지 한국을 방문한 마하티르총리의 동정은 국내언론에 단촐하게 보도됐다. 그는 자신의 카운터파트격인 한국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는 물론 그밖의 어느 공직자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5월 서울을 방문, 김영삼대통령과 만난 일이 있었다. 아무리 개인방문이라지만 손님신분인 외국의 현직총리와 방문국의 카운터파트 사이에 만남이 없었던것은 우리의 예법과는 맞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여타의 국내기업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와 현대와의 관계가 그 정도라면 말레이시아와의 상거래에서 공평한 대접을 받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국가원수의 해외나들이는 흔히 건배에서 시작해 건배로 끝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을 찾는 외국지도자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거창한 외교적 수사로 진짜 목적인 비즈니스를 감추거나 우회하곤 한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대통령의 힘을 빌리려고 애쓴다. 마하티르총리에 앞서 지난해 경부고속철도 사업자선정을 전후해 서울을 찾은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콜 독일총리의 행보가 좋은 예일것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가원수라도 몸소 세일즈에 나서야 할 만큼 지금은 경제전쟁의 시대인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기업의 초청으로 그 나라를 방문했다고 치자. 그것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아마도 상당한 의혹의 대상이 되었을것이다. 마하티르총리의 방한이 돋보였던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그 점이었다. 그는 현재 영국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한 영국언론이 그가 말레이시아 정부공사발주와 관련, 거액의 정치자금을 영국기업으로부터 받았다고 보도하자 그는 영국기업들의 말레이시아정부사업 참여를 전면 금지시켰다. 이는 양국간에 무역전쟁으로 비화돼 악화일로 중이다. 그같은 상황에서 그는 외교관례에도 흔치 않은 외국기업의 초청형식으로 직접 비즈니스외교에 나섰다. 용기와 배짱이 있는 지도자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경제외교를 강조해온 김영삼대통령이 24일 일본과 중국방문길에 오른다. 근년들어 우리 대통령들의 해외순방은 실리추구보다는 분에 넘치게 「인심쓰기」에 바빴던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아직껏 짐이 되고 있는 구소련에 대한 30억달러 경협지원약속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김대통령은 이번 순방길에서 일본과 중국의 지도자들과 수많은 건배를 들것이다. 술을 비운 잔에 돈독한 우의와 함께 얼마간의 실익이 담기길 기대해본다.<주간한국부장>주간한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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