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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불바다(장명수칼럼: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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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불바다(장명수칼럼:1656)

입력
199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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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양보하고 인내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북한은 다시 한번 흙탕물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그런 입장에 섰던 사람들은 「망나니 혈육」을 편들다가 그가 다시 망나니짓을 하는 바람에 곤경에 빠진 꼴이 됐다. 지난 19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자회담석상에서 북측의 박영수단장은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것이다. 송선생(남측 송영대수석대표)도 살아남지 못할것이다』라고 떠들었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온 국토를 피바다·불바다로 만들었던 그들이 다시 입에 담은 전쟁위협은 우리를 몸서리치게 했다. 6·25전쟁, 판문점 도끼만행, 대한항공여객기 폭파, 랑군 만행등 야만적 호전성으로 일관해 온 그들은 다시 그 수많은 악행들을 일깨웠다.

 북측의 「불바다」위협이후 정부의 외교안보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낙관적이고 안이한 대북관으로 원칙없이 북핵에 끌려 다니다가 공식회담 석상에서 불바다 운운하는 협박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사 구절을 새삼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측은 지난 50여년간 「믿을 수 없는 집단」이었는데, 남측 혼자 민족적·인도적 환상에 빠져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경계해야 할것은 이번 사태를 대북정책의 노선싸움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는것이다. 북측은 지금 자기들에게 보다 유화적인 남측 인사들의 입지를 흔드는 바보짓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측의 분열과 극단적 보수회귀로 인한 사회분열을 노리고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대북관계에서 우리는 당근과 채찍, 희망과 현실을 지혜롭게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단호해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냉전시대의 논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또한 인식해야 한다. 수류탄을 든 어린애처럼 핵을 들고 국제무대에서 좌충우돌하는 북한의 어리석은 도박은 근본적으로 그 자신의 문제에서 발생한것이지, 남측의 「유화적 통일론」의 결과는 아니다.

 북한이 변화하기란 너무 어려운것 같다. 그들은 동족을 향해 다시 총을 겨누고, 피바다·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할만큼 야만적이고 무모하다. 그럴수록 우리는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연구하고 인내해야 한다는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통일부담을 줄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다만 정부는 이랬다 저랬다 태도를 바꾸지 말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원칙을 가져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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