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 또 사재기 악순환/전당포식 은행영업 “문제” 우리 기업들은 땅을 특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땅이 있어야 은행에서 돈도 빌릴 수 있고 기업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5대 시중은행과 한미은행의 총 대출잔액은 34조3천9백53억원으로 92년말에 비해 5.1% 늘었다.
같은 기간중 담보를 잡지 않은 신용대출은 13조5천3백15억원에서 14조8백68억원으로 4.1% 증가하는데 그쳤다. 총대출에서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2년말 41.3%에서 지난해말에는 40.9%로 낮아졌다. 91년말에는 42.8%였다. 신용으로 대출받기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담보중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이 토지다. 기업측 입장에서 봐도 땅은 무척 매력적이다. 땅이 있으면 우선 은행 돈을 빌릴 수가 있고 그 돈으로 다시 땅을 사 그것을 담보로 또 대출을 받는다. 이런 방식을 계속 반복하다보면 기업은 땅도 늘게 되고 은행 돈도 쉽게 쓸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땅값이 급등, 기업은 2중의 이익을 본다. 토지공개념 연구위원회의 보고서(89년)를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땅 투자를 통한 기업의 성장지수를 따져본 결과 자금을 1백% 시설에 투자한 기업은 74년을 1백으로 했을 경우 87년에 3백31에 머문 반면 땅과 시설에 50%씩 나누어 투자한 기업은 6백12, 전액을 1백% 땅에만 투자한 기업은 1천4까지 올라갔다. 기계니 시설이니하는 것보다 무조건 땅을 사 두는 것이 기업을 성장시키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통계다.
이러니 기업이 땅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은행이 82∼91년 토지매매동향을 분석해본 결과 이 기간동안 기업들은 17조8천1백79억원의 땅을 순매입(매입에서 매각을 뺀것)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6∼88년 「3저」호황(저유가 저금리 저환율)때 번 돈을 집중적으로 땅에 퍼부어 89년 2조4천54억원, 90년 5조6백41억원, 91년 4조3천8백22억원어치의 땅을 샀다. 이 기간중 연구개발투자는 다 합해서 8조2천8백37억원으로 토지매입비보다 3조5천6백80억원이나 적었다.
기업들이 땅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차적인 요인은 땅을 사두는 것 자체로 쉽게 떼돈을 벌 수 있다는 한국 특유의 고질적인 토지 인플레다. 땅값이 내려가는 법이 없고 오를때는 간단하게 두배 세배가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아무리 땅값이 많이 오르는줄을 알아도 돈이 없으면 땅을 사둘 수가 없다. 일반 국민들이 바로 그런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은행을 이용해서, 은행돈으로 얼마든지 땅을 사들일 수가 있고 그렇게 사들인 땅을 담보로 넣어 또 더 많은 땅을 사고 해서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쉽게 부의 축성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것이 바로 은행이고 담보잡고 대출해주는 전당포식 은행영업이었다. 지금도 그런 일은 계속되고 있고 그런 관행 때문에 기업은 토지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땅으로 돈을 벌면 손쉽고 안전하다. 기업으로서는 더없이 효율적이고 안전한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한 나라 경제가 높은 땅값 때문에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우리경제가 놓여있는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이다.【이상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