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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은 방목체제가 아니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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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은 방목체제가 아니다(사설)

입력
199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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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을 둘러싼 작금의 긴박한 국내외 정세는 북한에 대한 분노에 앞서 우리 자신의 내부를 뒤돌아 보게 한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정체를 너무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본질을 직시하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경각심이 해이되어 있었던것이 사실이다. 특사교환 실무회담이 결렬에 이르는 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준 무례하고 도발적인 언동은 우리의 방심을 정신 차리게 했다. 우리의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게하는데 북한은 「이적행위」를 한 셈이다. 사실 북한에 남한은 언제까지나 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부인하고 싶어했다. 그들의 변함없는 남침야욕의 부동자세를 외면해 왔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무장해제를 하고 있었는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탈랭전시대의 분위기는 우리사회를 덩달아 해빙시켰다. 북한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라도 한것처럼 착각했다. 한반도가 냉전의 마지막 거점임을 망각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공산주의에 무감각해졌다. 공산주의는 탈색되었다는듯이 경계심이 늦춰졌다.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그늘에는 상당한 좌경세력이 기생하고 있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문민시대와 함께 명분을 잃은 이 세력은 기숙처가 없어졌다. 해체된줄로만 알았다. 새 시대가 이들을 안아서 모두 동참의 대열에 합류한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 중·고교 국사교과서 준거안 시안이라는것이 불쑥 나왔다. 역사상 공산계열의 「폭동」이 분명한것을 「항쟁」으로 분식했다. 용어뿐 아니라 내용 전반의 사관이 「진보적」이다.

 이것은 한낱 교과서 개편 시안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위원 한 개인의 의견이라지만 이런 편견을 당당히 공론에 내놓을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심각성이 있다. 이 일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수상한 구석을 드러내 준다. 얼마나 사회가 무감각해졌으면 이런 목소리가 공공연히 소리 지를수 있게 되었겠는가. 연구위원들을 위촉한것은 정부다. 개개인의 성향을 뻔히 알면서 용역을 맡긴것은 정부가 결과를 자초한것이다. 어쩌다 정부마저 이런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버렸단 말인가.

 민주화시대라지만 민주주의가 모든것을 용납하고 포용하는 커다란 아량인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 유일의 대치상황의 나라인 우리나라로서는 더욱 그렇다. 북한 공산주의가 전쟁협박까지 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민주화가 행여 민주주의의 저해요소를 내부에 기르고 있는것은 아닌지 각성한 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문민정부가 모든것을 방목하는 체제일수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한것은 북한 공산주의에 승리하기 위해서다. 민주화를 기화로 우리 사회가 이완되어서는 북한을 이기지 못한다. 그것을 오히려 북한이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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