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리를 또 다시 실망시키고 말았다. 지난 2월16일 핵문제가 유엔안보리에 회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은 IAEA사찰을 받기로 동의했으나 결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북한은 왜 또 다시 전면사찰을 거부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핵무기확산을 막는 것이 얼나마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부터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일 북한핵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문제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경우에서 보듯이 핵무기를 갖기로 결심한 나라에 대해서는 그것을 포기하도록 설득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걸프전쟁의 결과로, 남아공은 국내체제의 변동에 따라 핵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나머지 문제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설득방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핵문제는 결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동기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그 하나는 북한이 끝까지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한 경우다. 그러니까 그 어떤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말한다. 만일 북한이 이와 같은 입장이라면 그 이유는 북한 통치자들이 핵무기를 북한정권의 생존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 북한은 핵협상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그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한 도박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작년 여름의 북·미제네바회담을 보면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전반적인 관계개선」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김경원칼럼 93년 7월 23일자 참조). 그리고 여기에서 북한이 원한는 대미관계개선은 북한정권의 생존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동기는 어느 경우에도 김일성정권의 생존보장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뜻에서 핵옵션과 북·미관계는 어떤 상황에서는 상호 교환가능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협상에 의한 문제해결의 가능성도 바로 북·미관계와 핵옵션의 교환가능성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그 가능성은 지극히 제한된 것일 수밖에 없다. 북한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생존수단으로 간주하는 어느 정권도 그것을 포기하도록 설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핵무기옵션과 교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그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협상에 의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나는 작년 6월19일 김경원칼럼에서 「앞으로 우리 정부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인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더욱 확실하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제시했던 것이다.
물론 핵옵션과 교환가능한 인센티브를 제시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대응해 온다는 보장은 없다. 역사에서 비극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우리는 북한이 끝까지 핵옵션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선 북의 군사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에 이상한 시각에서 논의되었지만 패트리어트 미사일등을 배치하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전쟁억지력(DETERRENCE)이라는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북한핵문제를 단순히 대북협상의 차원에서만 보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핵문제는 우선적으로 군사문제이고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충분한 억지력이다.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는 불가피하게 대북제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근과 채찍」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제재를 협상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협상을 주장하면 온건파, 제재를 논하면 강경파라고 한다. 제재는 협상의 대안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북제재는 안보리절차와 상관없이 이미 어느 정도 가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심각한 고립상태에 놓여 있다.대북제재는 단순한 안보리의 공식절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적으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흔히 제재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의 역할을 논하지만 적극적 인센티브와 관련해서도 중국의 역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인권문제등을 포함한 미·중관계에 한국의 관점을 반영시켜야 하는 무거운 외교적 부담이 따르지만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도전이다.
북한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결국 북의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생존수단이라고 믿는 핵무기 또는 핵카드를 포기하도록 유인한다는 것은 결코 안일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북을 설득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냉철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역할, 그리고 나아가서는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외교적 오케스트레이션을 위한 구상도 「인센티브」에 대한 우리 자신의 판단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전주미대사·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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