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관계가 엉망으로 돌아가고있다. 19일의 특사교환 실무회담, 21일의 IAEA특별이사회 이후의 남·북관계는 대화냐 대결이냐의 갈림길에 선다. 오는 4월15일에 82세를 맞는 수령은 진정 『60세는 청춘이요 90세는 환갑』일정도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남과 미국, 일본등과 대결로 문제를 해결할만한 완벽한 국가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구속에 갑자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항소심에 계류중인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을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수령은 과연 북의 핵을 둘러싼 엉망진창을 풀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묻고싶다.
왜냐 하면 그가 남·북의 유력인사를 통틀어 수령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북한방문기인 「사람이 살고 있었네」(93년 9월·「시와 사회사」발간)에는 개인적으로 세번, 연회나 행사자리에서 네번, 모두 일곱번이나 수령을 만났다고 적혀있다.
그가 89년3월 고문익환목사등과 함께 처음으로 수령을 만났을 때의 인상은 깊다. 『체격이 크고 쇳소리가 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호남자입니다. 완전한 백발은 아니고 회색의 반백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썹이 짙고 길게 드리워 있는것이지요』가 첫인상. 소설가인 그는 「눈썹이 짙고」는 박성철 오진우등 풍찬노숙한 빨치산 출신 북 두목급인사들의 특징이라 적고있다.
91년 8월에 그는 그때 캄보디아 최고민족이사회 의장이던 시하누크전왕부처, 수령의 부인 김성애와 자리를 함께했다. 김성애는 한복차림에 노부인처럼 보였다.
수령은 시하누크가 꺼낸 건강문제에 답하며 자랑했다. 『건강의 비결이 뭐 따로 있소.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되는게지. 우리는 60청춘, 90환갑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나는 아직도 환갑이 못되었소. 시골에 가면 아흔 넘은 노인들이 많습네다. 나는 항일투쟁하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여러번 죽었다는 소문이 나서 아마 오래 사는 모양이오. 일본 관동군이 내가 사살되었다, 체포했다, 여러번 삐라를 뿌리고 관보에 까지 나갔디. 혁명하려면 인민들처럼 낙관적으로 생활해야 합네다』고 했다. 그런 수령은 오른쪽 귀가 어두웠다.
수령은 그에게 사진한장을 건네 주었다. 사진에는 꼬리가 길고 경쾌한 몸집의 한얀색 까치가 소나무 등걸아래 앉아 있었다. 수령이 정원에서 산보중 보고 찍었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나라에 경사가 날때 나타났다고 기록되어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래는 모양이오. 그 사진은 황작가가 잘 간직하시오. 기래서 통일의 기쁜소식을 온 민족에게 알리는 흰까치가 되시오』라고 했다.
수령은 방북한 독일 녹색당 대변인 라이너 베닝에게는 개방·개혁 문제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놨다고 황석영은 그에게서 전해들었다. 『글쎄 답답하니까 창문을 좀 열긴 열어야겠소. 그런데 조금 열면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지만 너무 많이 열면 파리, 모기같은 벌레들이 많이 들어오겠지요. 방충망을 쳐야 되겠지』
황석영은 수령의 외교가 원칙주의에서 벗어나 최근의 냉전종식후 힘과힘의 공백을 「정면돌파」하는 현실주의 노선을 따라 이익을 보고 있다고 보고있다. 실험용 원자로 수준의 핵으로 주한 미군의 핵존재를 확인시키고 상호사찰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정녕 그럴까.
아닐것이다. 수령은 개혁과 개방의 방충망을 핵개발과 이의 은폐로 막으려하고있다. 부자세습 공산체제를 유지하려 하고있다. 수령의 「흰까치」인 그를 사면해서라도 북으로 보내 엉망상태인 남·북관계에 대한 수령의 진심을 알아냈으면 좋겠다. 답답해서 하는 엉뚱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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