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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땀방울이 「땅」에 묻힌다(고지가 벽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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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땀방울이 「땅」에 묻힌다(고지가 벽을 깨자)

입력
1994.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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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늘어도 땅값 못따라/「일 의욕」보다 투기만 조장 높은 땅값에는 근검절약도 노사화합도 소용이 없다. 고지가의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선 경영자의 기업윤리도, 근로자의 땀방울도 아무런 결실없이 「땅」속에 묻혀버린다. 노·사·정이 입을 모아 아무리 경쟁력강화를 외쳐도 철벽같은 「고지가구조」앞에선 무참히 깨져버리는게 현실이다.  

 천정불지로 치솟기만하는 땅값은 극소수 땅부자만을 이익되게 한다. 전체국민중 상위 5%의 계층이 총 민유지의 65·2%를 소유한 반면 못사는 하위 50%계층의 땅은 2%에 불과할만큼 우리나라 땅의 분포는 불평등하다. 땅값이 오르면 토지소유계층은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떼돈을 벌지만 제땅이 없으면 기업가나 근로자나 앉아서 소득을 잃게 된다.

 악성적 고지가구조는 고금리·고임금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강화를 가로막는「족쇄」다. 금리는 뛰어도 은행돈을 빌리지 않으면 서민들의 직접 손해는 없다. 고물가·고임금이 중소기업을 압박하고 가계살림을 짓누르지만 박탈감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땅값만은 다르다. 고지가는 정작 땅이 필요한 이들에게 「토지접근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공장을 지으려해도 땅값이 비싸 창업을 포기하고 막상 땅을 갖게 되면 생각이 달라져 좋은 물건을 만들기 보다는 몇곱절의 차익이 보장되는 투기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무수한 불로소득자를 양산시켜 근로자·경영자 모두에게 「일하려는 의욕」자체를 좌절시키는것이다. 경쟁력강화를 주도해야 할 재벌들이 은행돈을 빌려 공장은 안짓고 땅장사만 했던것도 「타고난 투기성향」이라기 보다는 고지가구조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상술인 셈이다. 산업경쟁력이 도무지 배양될 수 없는 토양이다.

 땅값에 시달리는 우리기업들의 실상은 안타깝기조차 하다. 지난 87∼92년중 제조업체들은 연평균 15.3%의 높은 매출신장을 올렸지만 순이익률은 88년 2%에서 92년엔 0.9%까지 곤두박질쳤다. 매출증가율을 훨씬 웃도는 지가상승률(연평균 17.7%)때문이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이자물고 임금주고 땅값까지 물다보면 남는게 없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땅속에 묻혀버리는 형국이다.

 86년 제조업체들의 설비투자액중 토지구입비 비중은 2.87%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88년 4.45%, 90년 4.61%로 높아지더니 작년엔 6%까지 육박했다. 설비투자재원을 모조리 투입해서 기계를 사도 모자랄 판에 토지매입비 비중이 이처럼 과중하다면 이것은 「투자를 하지말라」는 얘기가 될수 밖에 없다.

 높은 땅값은 토지소유자와 비소유자간의 소득을 재분배시킨다. 땅값이 올라 생기는 매매차익이나 임대료는 모두 비보유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것이다. 땅없는 사람들이 땅주인들의 소득을 올려줌으로써 왜곡된 소득분배구조를 더욱 왜곡시키는 「제로섬게임」이다. 「고지가의 벽」은 그래서 경쟁력약화의 주범이기에 앞서 일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없애고 투기의식만을 불어넣는 반경제적이고 천민자본주의적인 독소다.

 거짓말 않고 언제나 노력만큼의 결실을 준다는 「땅」은 많은 기업과 서민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돼버렸다. 「고지가의 벽」을 깨지 않고서는 일할 의욕도 경쟁력강화도 기대할 수 없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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