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린든 존슨전대통령이 50년대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그는 맹방으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바로 호주의 파견부대가 1966년부터 72년까지 미군이 거의 다 철수할 때까지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4월에 폴 키팅호주총리는 그 베트남을 방문한다. 그의 방문은 호주의 외교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호주는 아시아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과 달라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역대 미국무장관들은 그동안 캔버라를 방문, 호주로부터 동의와 존경이라는 환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금번 워런 크리스토퍼미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기전 들렀을 때는 이전의 호주가 아니었다.
가레트 에번스호주외무장관은 크리스토퍼장관에게 호주는 미국의 대일본제재에 대한 지지호소에 동의할 수 없다고 분명히 전했다.
에번스장관은 이는 관리무역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상호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일본보복이 효과를 나타낸다면 일본시장에서 미국상품이 우위를 점해 결국 호주상품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주정부와 언론들 모두 중국이 오는 6월까지 인권개선에 성과가 없으면 무역최혜국(MFN)대우를 경신해주지 않겠다는 미국의 압력에 비판적이었다.
에번스외무장관은 크리스토퍼미국무장관과 이틀간의 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MFN대우 철회는 아시아전체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대중압력이 특히 홍콩경제에 치명상을 줄 것이며 결과적으로 호주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통상정책, 그리고 미국의 난폭한 전술이라고 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양국간의 날카로운 대립은 두나라의 관계가 변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인 면에서나 심리적인 면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1901년 영국식민지로부터 이 거대한 섬대륙이 독립했지만 새로 탄생된 국가는 여전히 식민지적 열등감을 지닌채 영연방의 테두리안에 머물렀다. 그러나 화제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바탕이 된 「쉰들러 아크」의 저자인 호주작가 토머스 케닐리는 이제는 영국문화의 위세에 눌려 밀려난 호주문화와 사회의 고유성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후 양국간의 거리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양국간 유대가 약해졌다. 미국은 영국을 대신해 호주의 강력한 우방이 됐으며 앤저스(ANZUS)협약으로 맹방의 관계는 공식화됐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정책에 대한 호주의 확고한 지지는 관계의 친밀성을 보여주었다. 그후 다른 개도국처럼 호주도 국가간의 관계에서 잠재적 갈등요인으로 군사보다 경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주인접국들의 경제는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5년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최근까지도 호주는 공식적으로 아시아가 아님을 천명해왔다. 그것은 백호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연히 아시아지역에서의 이민도 금지시켰다.
이 정책의 포기 후 아시아인의 유입은 점증, 현재 아시아계가 호주인구의 4%를 차지하고있다. 시드니의 한 택시운전사는 『더 잘 살기 위해』 중국광동성에서 왔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의 메아리도 여전하다. 호주는 과거 지구상에서 가장 남성중심의 문화를 가진 나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강력한 여성운동이 펼쳐지고 있으며 2명의 여성은 정계의 선두에 서서 맹활약하고있다.
호주에서는 미국처럼 게이와 레즈비언들도 당당히 행세하고 있다. 지난주엔 동성연애자들의 퍼레이드를 보려고 5만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으며 호주의 ABC TV는 한시간동안 방송을 내보냈다. 일부정치인들은 방송을 내보낸것에 대해 불평했지만 대부분은 재미있었다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이런점에서 호주는 오늘날 미국사회보다 다양성을 가지고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어쨌든 현재 이 나라에는 독특함이 있다. 그것은 그 어느 것의 복사판도 아니다. 토머스 케닐리의 말대로 호주는 더욱더 그 어떤것도 아닌 호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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