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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때 빼앗긴 조선불화들/나고야 일대서 17점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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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때 빼앗긴 조선불화들/나고야 일대서 17점 발굴

입력
199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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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색채 “아픈역사 생생히…”/부드러운 선 “세계최고 예술성”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왜군이 약탈해간 조선불화들(한국일보 3월14일자 1면 보도)은 문화재약탈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려는듯 4백∼5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10여년동안 일본내 조선불화 발굴에 주력해온 나고야 조선사연구회(회장 관정정지·56·동방학원이사)는 나고야(명고옥) 일대에서 지금까지 17점의 조선불화를 확인했으나 아직도 상당수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단체의 요청으로 지난 10일 나고야의 칠사, 삼중현의 서래사 조전사등이 공개한 불화는 가로, 세로 크기가 2·5 내외의 비단이나 마포에 그려진 대형 괘불화이다. 그러나 그림 뒷면의 명문(명문)은 지워져 있거나 표구과정에서 잘려 나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임란 이전의 조선불화는 예술성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되는데 정작 이들 국보급 문화재를 가져간 일본에서는 중국 송대의 불화로 잘못 알려져 일본 중요문화재로만 지정돼 있다. 고려불화가 불교의 교리 자체를 표현한 것이 많은데 비해 조선불화는 현세구복(현세구복) 기원을 담고 있다.

 그중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당회석가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림의 아래 부분에 석가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뒷모습의 공양자이다. 화려한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으로 미루어 조선왕조 최대의 숭불자였던 문정왕후(?∼1565년)로 추정된다.

 또 1488년부터 150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각만다라」는 끝부분이 약간씩 훼손됐지만 색채는 여전히 현란하다. 1백년에 한번 정도씩 표구를 바꾸며 끝부분을 잘라내 원래 크기보다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상의 풍만한 몸매와 부드러운 선에서 조선불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우란분경설상도」는 임란 1년전인 선조 24년(1591년) 제작됐다. 보살이 민중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극락과 지옥으로 동시에 표현하는 그림이다. 불화에 인간세상의 최하계층인 사당패를 그려 넣는 양식은 한참뒤의 작품인 경남 하동의 쌍계사에 있는 「감로왕도」(1728년 제작)에서도 발견된다.

 나고야조선사연구회의 누키이 마사유키(관정정지)씨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 한국학자들의 고증을 얻으려 했으나 약탈당한 조선불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자들이 없었다』며 『앞으로 일본 전역에 숨겨진 조선문화재의 실체를 밝혀내 역사를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고야=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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