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때 강제로 끌려가 “70평생 고통”/태평양전쟁유족회 추도사 눈물로 가득 『어허야 우리 인생 그 누가 훔쳤더냐/ 이렇게 속절없이 허망하게 떠날 것을/ 그 아픔 보듬고 긴 세월 찢었더냐/ 생전에 벗지 못한 아린 통한 남겨둔 채 /홀연히 떠나가는 이 모습 새겨주오 / 어허야 나는 간다 영원한 자유찾아』
18일 하오1시30분 서울 용산역광장에서 지난 12일 인천 남구 옥련동 단칸 셋방에서 홀로 한많은 생을 마감한 종군위안부출신 전금화 할머니(70)의 영결식이 열렸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량순임공동대표가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자 회원등 1백50여명은 한을 안고 간 전할머니의 넋을 위로하며 눈물을 훔쳤다.
23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그는 17세때 일본 관동군 아사히(조일)부대에 위안부로 끌려가 짐승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생전에 『아사히부대 인솔자가 집으로 와 연행하려 해 반항하자 총검으로 허벅지 이마 머리등을 닥치는대로 찌르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살기 위해 트럭에 몸을 실었다』고 말했었다.
「스미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위안부생활을 하게 된 그는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같은 조선여성 8명과 함께 하루에 20여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만 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45년 10월 귀국했다. 일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은 그는 귀국후 주위 사람들에게 사실을 숨긴 채 상업을 하는 딸(33)의 도움으로 숨죽이며 살아왔다.
태평양전쟁유족회는 영결식을 마친뒤 일본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해는 이날 하오 늦게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됐다.【김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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