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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털어넣고나면 여력이 없다”(고지가 벽을깨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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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털어넣고나면 여력이 없다”(고지가 벽을깨자:3)

입력
199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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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재투자 엄두도 못내/“아예 해외로” 제조공동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투자를 겁낸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 모아 봤자 땅에 털어넣고 나면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땅에 밑천을 다 쏟아 붓고 나면 기계 사고 사람 구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턱없는 땅값이 경쟁력을 갉아먹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업과 재투자의 씨까지 말려버리고 있다.

 투자를 겁내는 경제는 「죽은 경제」나 다름없다. 고지가가 경제 마디 마디에 철침을 박고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형국이다. 땅값에 시달려 온 우리 기업들은 앞 다투어 해외로 탈출해 나가고 있다. 외국업체들은 떼를 지어 철수중이고 새로 진출을 시도하던 외국업체들도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89년 영국에 공장을 세운 대우전자 배순훈사장은 『5만㎡짜리 공장부지를 거의 공짜(단돈 1달러)로 얻었다. 고용만 늘릴 수 있으면 기업주나 자본의 국적이 어딘들 개의치 않는 영국은 투자비의 절반을 융자해 주고 종업원 1인당 수백달러씩의 고용보조까지 해줬다』고 말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조건이다. 

 고지가에 발이 묶인 기업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새로 조성한 전북 전주공단에 19만5천7백15평의 부지를 확보한 현대자동차는 땅값으로만 3백42억원을 들였다. 평당 17만5천원씩이다. 86년 캐나다에 51 만4천평을 매입하는데 통째로 단돈 6백15원이 든 것에 비교하면 경쟁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선경 제일제당등 6개기업이 최근 미국 동남아등 해외에서 사들인 공장용지의 평당가격 4.96달러에 비해도 말이 안된다. 전주공단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수도권지역은 평당 60만∼1백20만원선이 대부분이다. 

 고지가의 해독은 중소기업에 더 치명적이다. 기협중앙회가 4백60개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90∼91년사이 임대료를 10%이상 올려 지불해야 했던 업체가 전체의 67.9%였다. 서울지역에 있는 업체들은 35.8%, 인천·경기는 31.5%나 올려줘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성은 물론 물가상승률을 몇배나 앞지르는 엄청난 인상률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상유지조차 기적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창업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고지가 멍에 때문에 상당수 중소기업가들은 「범법자」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공장을 짓지 못하도록 돼 있는 곳에 공장을 차리는 것이다. 수도권지역만 해도 3천5백72개가 무허가공장이다. 경기도 고양시 나환자촌에서 무허가공장을 10여년째 운영해 온 오태규씨(D화학사장)는 『임대료가 허가지역보다 30∼50% 싼 평당 월 1만5천∼2만원선이다. 비싼 땅값에 쫓겨 들어 온 업자들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번 오르면 내릴줄 모르는 땅값, 세계최고수준에 도달한 한국의 고지가는 맹렬한 속도로 제조업 공동화현상을 가속화시켜 멀지 않아 우리나라를 산업의 불모지로 만들어 버릴 우려조차 없지 않다. 외국은 공짜땅에 지원금까지 내걸고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는데 우리는 땅값을 잔뜩 올려 기업을 밖으로 내쫓고 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땅값이 자꾸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전국가적이고 전국민적인 반성이 한번 있어야 할 것이다.【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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