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세·불신 못참을정도/이번기회에 뿌리 뽑자” 상문고비리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즉각적인 수사지시는 청와대 참모들의 건의없이 나온것이었다. 큰 사건·사태 발생 때마다 「여론동향」을 읽고 재빨리 대응하는 특기가 발휘된것이다. 검찰은 당초 통상 해오던대로 서울시 교육청의 감사결과가 나오면 수사에 들어갈 계획이었고 청와대 참모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김대통령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주 전면에 나서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 이회창총리가 이미 지시한 뒤 다시 직접 지시를 하게 된데는 이유가 있을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우선 김대통령은 상문고 비리에 접하고 『교육현장의 병든 풍토를 총체적으로 드러낸것』이라며 국민들의 교육현장에 대한 불신이 한계를 넘어설것으로 우려했다는것이다.
또 그동안 상문고에 대해 교육부의 감사가 있어 왔는데도 비리가 방치됐다는 언론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역시 진행되는 감사에 국민들이 불신의 시선을 보낼것을 감안했을것이란 얘기이다. 김대통령의 지시가 있기전에도 청와대의 분위기는 개탄 일색이었다. 여기에는 김영삼정부 개혁1년의 성과가 교육계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곤혹스러움과 교육개혁의 어려움을 인식한 착잡함도 서려 있었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김대통령의 말대로 교육개혁의 일대 계기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검찰수사는 우선 기소할 수 있는 범죄입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만 이와 함께 비리와 부조리의 전모가 낱낱이 파헤쳐져야 한다는것이다. 상문고의 대국회로비의 실상이 규명되고 과다한 찬조금기부자 명단공개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세운것도 이때문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자식둔 학부모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려운게 우리 풍토이지만 이 기회에 학부모들의 굴절된 교육열도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금 당장 사학재단 부정전반에 대한 수사를 상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상문고비리의 발본색원을 통해 교육현장 비리를 이 기회에 뿌리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그렇다고 교사를 범죄시해서는 문제해결이 어렵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교육제도 개선을 통한 교육현장개혁이 바람직할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현행 대입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내신제를 하루아침에 바꾸는등의 급격한 제도개혁을 정부가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는것은 아니다. 찬조금문제도 외국처럼 자연스러운 일로 양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없는게 아니지만 우리 교육현실이 이를 어렵게 한다는 반론도 많다. 이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교육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데 대해 전적으로 수긍하면서도 제도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뾰족한 얘기를 못하고 있다. 다만 이번 검찰수사나 교육부의 전면감사가 사정차원의 비리척결에 끝나지 않고 제도상 허점이나 개혁대상을 파악하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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