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증가 「하한선 14%대」근접/시중돈 실물경제활동 비해 아직 많아/경영자·근로자의식 바꿔야 「고비용」깨□대담=박무경제부장
김명호한국은행총재는 『지금의 경기상황은 이미 불황을 벗어나 회복기를 지났으며 회복에서 확장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15일 취임 1주년을 맞은 김총재는 『올해 물가를 위협하는 요인이 많기 때문에 물가안정이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를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또 앞으로 지자제나 총선등 여러 경제외적인 교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통화가치의 안정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 선거로 인해 돈이 많이 풀리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지금의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매우 불투명하고 복잡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회복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과열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고 소비와 생산 유통등 모든 부문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양극화 현상이 돌출해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제가 총재로 취임할 때 우리 경제는 불황에서 막 탈출하는 시기였습니다. 그후 경기는 계속 회복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하반기 금융실명제와 금리자유화등이 있었지만 6.5% 성장이 예상됩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양극화현상도 있지만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가 활발해 올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비해 성장률이 더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 상황은 불황국면에서 벗어나 회복국면에서 확장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물가를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 거품경기의 재현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지만 일반국민들로서는 생활물가의 계속적인 상승이 제일 큰 걱정거리입니다.
『올들어 농산물가격상승등으로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요금의 현실화, 수입원자재가격의 상승, 경기상승에 따른 수요압력등으로 낙관하기 어려운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물가안정이 가장 큰 당면과제입니다. 물가상승이라는 악재는 반드시 억제되고 배제되어야 합니다』
―물가안정과 관련, 한은의 통화관리가 미숙하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조기에 큰 무리없이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은의 신축적 대응이 효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통화는 실물경제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위에 있다고 판단되며 물가상승요인도 잠복하고 있어 통화를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통화증가율 목표가 14∼17%로 설정되어 있지만 하한선에 가깝게 운영할 생각입니다』
―성장과 안정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지만 그게 안될 때, 가령 안정과 성장을 택일해야 한다면 총재께서는 어느쪽인지요.
『물론 안정이 우선입니다. 올해의 성장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년 내후년의 성장도 생각해야 합니다. 안정기반 없는 성장은 사상누각이지요』
―「신3저」(저금리 저유가 저환율)는 「구3저」에 비해 여건이 훨씬 더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상황은 그 때와 비교도 안될 만큼 성적이 안좋습니다. 여건활용이 미숙하다는 평가도 될 수 있겠습니다만.
『객관적 측면은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만 그 당시 주요 수출품이나 원가구조상 특징을 보면 기본적으로 저임금구조를 기초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이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수적으로는 당연히 호전정도가 낮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기회를 빨리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경제는 기본적인 구조가 고비용으로 돼있어서 가격쪽에서 경쟁력이 원천적으로 봉쇄돼있고 품질을 결정하는 기술도 단기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돼있습니다. 토지 자본 노동등 생산요소 비용을 낮출 수 없고 기술도 단기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경쟁력이 나올 구멍이 없다는 얘기가 될 수 있겠는데요. 한계에 부닥친 경쟁력의 벽을 깰만한 무슨 묘책같은 것은 없을까요.
『「고비용」이 문제지만 급속한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경영자나 근로자 모두 의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없더라도 근로자가 노동윤리를 회복하고 경영자가 경영합리화를 이룬다면 경쟁력회복의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정부도 근로자들에게 생활안정의 확신을 높여주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물가안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인플레를 막아 경제적으로 민생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흔히 로마시대의 호민관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문민정부출범 이후 물가가 마구 뛰어 민생이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한은이 고분고분하기만하고 너무 조용한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신정부출범전부터 새경제팀내에선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고 저도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은은 나름대로 소신을 지켰다고 봅니다. 신경제 1백일계획실시중에도 통화공급을 늘리지 않았고 실명제이후에도 정부는 연말통화증가율을 22%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지만 한은은 물가안정을 위해 20%이내를 주장했습니다.
한은의 기본임무는 신용질서 유지와 통화가치 안정입니다. 한국은행은 민생의 수호자가 돼야 합니다. 통화가치안정을 통해 민생을 보호하는 것이 한은의 으뜸가는 책무지요. 저는 한은에 30년 넘게 봉직해 한은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며 한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한은 총재로서 통화안정과 민생보호라는 본질적인 책무를 다하는데 어떤 주저나 망설임도 있을 수 없고 소신을 굽힐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소리나지 않게 일을 하고 있을뿐입니다』
―총재께서는 역대 어느 한은총재보다도 여러가지 큰일을 많이 치렀습니다. 금융실명제와 금리자유화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는 어떻습니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금융실명제는 성공적이라고 자신합니다. 큰 부작용도 없었고 조기정착의 징후가 뚜렷합니다. 금리자유화도 일부에선 실명제여파를 우려해 연기를 주장했지만 한은은 오히려 조기실시를 요구했습니다. 연말이후 금리는 하향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이 역시 빠르게 정착되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장선거와 총선처럼 경제안정을 저해할 수도 있는 정치·사회적 요인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한은의 사명은 통화가치를 안정시켜 물가를 잡고 국민경제의 신용질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필요이상의 돈이 풀렸다고 생각되면 이를 강력히 억제할 것입니다. 그것이 중앙은행의 임무고 곧 저의 책임입니다』【정리=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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