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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버릇(장명수칼럼: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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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버릇(장명수칼럼:1654)

입력
199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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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22일자 한국일보 「기자의 눈」에 사회부 설희관차장이 썼던 「무서운 아이들」이란 글이 화제가 된적이 있다. 국민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만든 문집에서 『20년후 담임선생님의 미래상은?』이란 설문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는것이 그 내용이다. 학생들의 대답중에는 『우리학교 교장선생님』 『배삼룡을 닮은 할아버지』등 괜찮은 내용도 있었지만, 『거지가 되어 우리반 아이의 집에서 살고 있을것』 『죽었겠지 뭐 관심없다』 『꽥, 해골』 『중풍+노망』등 마구잡이 표현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 「기자의 눈」을 읽었다는 한 어머니는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에게 나쁜 감정이 있었다기 보다는 평소에 만화등을 흉내내며 까불던 버릇이 튀어 나왔을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요즘 아이들이 악의도 없이 악동이 돼간다고 걱정하였다.

 며칠전 한 어머니로부터 이와 비슷한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이가 올봄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어제 학교에서 크게 싸웠답니다. 며칠째 집적거리는 애에게 욕을 했더니 한반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붙어, 붙어」하며 레슬링 응원하듯 소리를 치더래요. 우리애는 몸이 큰데다가 운동을 했기 때문에 싸움에서 지는 아이는 아닌데, 안싸우려고 해도 도저히 안싸울 수가 없게 됐답니다. 두 아이가 싸우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한술 더떠서 「천원, 천원」하고 돈을 흔들며 내기를 걸었대요. 우리애가 상대방을 때려 그 애가 코피를 흘리자 우리애의 승리로 싸움이 끝났는데, 우리애에게 돈을 걸었던 애들이 몰려오더니 「수고했다. 수고했다」하며 어깨를 주물러 주고 등을 두드려 주더랍니다. 우리애는 「애들끼리 싸우다가 왜 큰 일이 벌어지는지 알겠어요」라고 뒤늦게 겁이나는 눈치였는데, 어쩌다 학교분위기가 이지경이 됐을까요』

 한반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는게 아니고, 싸움을 붙여 내기를 건다는것은 또 무슨 흉내를 내는걸까. 투우나 닭싸움을 구경하는 기분일까. 주먹에 맞아 코피를 흘리는 친구를 버려둔채 자기가 돈을 건 친구가 이겼다고 박수를 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악의없이 악동이 돼가는 아이들이 많다. 악의없이 흉내를 내고, 친구들과 휩쓸리고, 아이들의 물건과 돈을 뺏다가 탈선하게 된다. 학부모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 교육환경을 바로 파악해야 한다. 교육환경은 날로 오염되고 있는데, 가정교육은 날로 허약해지고 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살버릇 여든까지라고 했는데 하물며 열살버릇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아이도 친구들의 싸움에 천원을 걸고, 박수를 치고 있지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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