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와 이슬람계가 연방결성 헌법초안에 합의한것은 보스니아에 평화를 가져오는데 큰 계기가 될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 연방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세르비아계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문제다. 우리는 「인종청소」라는 폭력의 잔치가 무한정 계속될 만큼 국제사회에 보편적 인간애와 정의감이 없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국제사회는 보스니아 내전의 조기종식을 지원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특히 수세기 동안 발칸지역을 3등분한채 밀고 당기며 문명의 대결을 벌여온 로마 가톨릭과 이슬람 및 그리스 정교회 문화권에 인종갈등의 「원죄」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서방세계의 평화전략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스니아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한다고 해서 땅에서 일어나는 학살의 악순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사라예보를 에워싼 산과 고원에 중화기 배치금지지대를 설치한다고 평화의 시대가 막을 올리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오히려 철수한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중화기는 다른 전쟁터로 옮겨져 제2, 제3의 「사라예보」를 낳을 수 있다.
이제 세계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 군사적 제재는 행동의 출발점일 뿐 그 종착역일 수는 없다.
일부 구주국가는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스니아의 분할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갈등을 더욱 더 부추기는 악수로 여겨진다. 3대 문명의 대결 속에서 강렬히 뿌리내린 외래문화의 종교는 보스니아 사회를 일종의 종족 모자이크로 변질시켜 놓았다. 산과 강을 넘기만 하면 다수가 언제고 소수종족이 될 수 있는 얽히고 설킨 이질적 사회가 되어버리고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경선을 긋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지역경계의 재설정을 위한 흥정의 장이 열릴 기미만 보이면 종족 생활권을 확대하려는 내전의 기운은 다시 강렬해질 것이다. 보스니아의 3대 세력은 지난 「역사」 때문에 헤어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원론적인 탁상공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느슨한 연방체제 형성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
따라서 수세에 몰린 크로아티아계와 이슬람계 사이에 연방정부를 구축하고 거기에 세르비아계를 동참시키려는 미국의 평화계획은 세계가 지지할만한 것이다.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영향을 행사하는 러시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러시아는 국내의 민족주의 세력을 견제하면서 평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아울러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면서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환상에 젖지 말고 세르비아계를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세계는 탈냉전 시대에서의 러시아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가를 보스니아에서 확인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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