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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에 문제있다(이세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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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에 문제있다(이세중 칼럼)

입력
199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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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헌정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이 치솟았던 문민정부에 대한 지지열기는 요즘 들어 눈에 뛰게 수그러든 느낌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신한국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 부정부패 척결을 국정지표의 제1과제로 내세우고 취임직후 강도높은 사정작업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한편 우리 군의 고질적 병폐인 사조직을 해체하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함으로써 지역과 계층을 초월한 폭 넓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과거 군사문화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정권 당시 치외법권과 같은 성역으로 여겨졌던 군부내의 고질적 인사비리와 군 현대화계획과 관련한 군수비리에 대하여 서슴없이 사정의 칼을 대어 오랫동안 검은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엄청난 규모의 부정부패를 과감하게 파헤침으로써 문민정부로서의 차별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실제로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는 외교적 성과나 국내 경제사정의 호전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집권자의 강력한 개혁의지에 따른 성역없는 부정부패 척결과 윗물맑기의 실천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데 이론이 없다. 따라서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지지열기는 한 마디로 부정부패를 추방하려는 강력한 개혁의지에 원천이 있다고 할 것이며, 많은 국민들은 문민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주변에서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문민정부의 개혁의지에 심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면서 개혁의 성공을 그토록 바라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 권력 핵심부에 있음을 기화로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워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권력형 부패사범이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의 관대한(?) 판결로 풀려나는가 하면, 군의 승진인사와 관련하여 역시 억대의 뇌물을 받아 먹은 군고위장성들이 줄줄이 집행유예의 은전(?)으로 풀려났다. 군의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과 관련해 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수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국방장관과 고위 장성들에게도 항소심 법원은 집행유예로 석방하는 관대함을 보여 주었다.

  무릇 재판은 헌법상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된 법원이 하는 것이며 사법부의 판단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법원의 판결결과를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결코 안되는 일이지만 법원에서 권력형 부정부패 사범을 대부분 정상참작이라는 구실로 마구 풀어주고 있는 사태는 소박한 일반국민들의 법감정에 크게 어긋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개개 재판에는 제각기 나름대로의 항변사유와 정상 참작사유가 있음이 분명하고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유·무죄와 양형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부패추방이라는 국민적 합의에 비추어 보면 이와 같은 권력형, 축재형 부정공직자에게 집행유예의 느슨한 량형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는 과거 수십년간 관행적 행태로 뿌리깊게 퍼져 있어서 문민정부 출범전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정도로 위험수위에 다다랐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고위공직에 있거나 권력핵심부에 가까이 있으면서 권력과 직위를 이용하여 축재를 목적으로 자행하는 공직자의 부정은 국가의 기틀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범죄라고 본다.

 국민이 문민정부에 대해 열렬한 성원을 보낸데에는 바로 이와 같은 공직사회의 부패를 뿌리뽑아 달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공직사회의 부패구조는 수십년간 보호관계에서 성장해온 관계로 매우 단단하게 굳어져 좀처럼 깨기 어려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부패구조를 깨뜨리려면 일시적이고 임기응변식의 대처나 지나친 관용, 동정으로는 도저히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추진과 함께 엄정한 법적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유형의 범죄사범에 대해서는 낮은 직위에 있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정책에 관한 결정권한이 있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게 더 무거운 형벌을 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직위에 따른 책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데다 직무의 불가매수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직사회의 부패를 성공적으로 추방하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확립한 서구선진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호주등 국가에서는 고위공직자의 수뢰사건에 대해 거의 예외없이 중한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뇌물을 받은 공직자는 가차없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함과 동시에 부정부패가 사회악 중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강하게 표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준엄한 법집행이 뒤따르지 않고는 부정부패의 근원적 추방은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 먹어도 법원에 가면 대개 풀려난다는 인식이 보편화될 때 과연 부정부패가 근절될 수 있겠는가. 부정공직자가 과거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 국가에 공헌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사정이 고질화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나 국민적 합의보다 결코 우선할 수 없다고 본다. 

 실로 30여년만에 문민정부가 등장해 모처럼 시도하고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추방노력이 시대적 요구에 둔감한 일부 법관의 지나친 관용(?)으로 인하여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적이 걱정된다.<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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